성소(vocation)는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한 가장 적절한 삶의 타이밍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삶을 내가 아닌 주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달리 말하면 제자가 준비될 때에야 스승이 나타나셨습니다.
한때 남들처럼 근사한 대기업에 취업해서 결혼하고 사회생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양 여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내 삶에 대한 기대와 야심에 똘똘 뭉쳐 세상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IMF로 세상이 파탄 났습니다. 돈을 모아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었던 나의 목표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살았습니다.
돌아보면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는 과정, 새가 알을 깨듯이 고통을 통한 변신 없이는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믿던 나를 내가 포기하자 주님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부르심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설레임과 두려움, 참된 성소의 길에서 이 두 가지는 늘 함께 했습니다.
오늘도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신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떨리기도 합니다. 만나는 사람의 진심과 영혼이 느껴지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드러내야 하는 일의 어려움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부르심의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바라보고 배워야 할 분이 계십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복음의 제자들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배움을 주시는 분에게 계속해서 가르침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스승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닮음, 제 2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어떤 한 가지 기준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면 우리가 날마다 바치는 미사 안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께서 제자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나를 기억하여 말하고 행동하라. 나를 기억하여 섬기고 사랑하라. 기억한다는 것은 함께 한다는 것이고 함께 한다는 것은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또 다른 너에게 그리스도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