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천주교 신자가 되었을까?’ 이런 질문 한번 안 해 본 신자는 드물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여길 때도 있지만 종종 신자로서의 의무, 교회와 성직자, 수도자에 대한 실망, 신자들 사이에서의 상처 때문에 신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버거울 때 ‘그때 천주교 신자가 되지 말았어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가 된 이유는 형 때문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저와 영원한 라이벌 관계에 있던 형이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형이 하는 것을 제가 따라하고 싶지 않았지만 옆에서 성당 다니는 형을 지켜보니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부러웠습니다. 그러다가 형이 ‘성당에 갈래?’하고 물어보기에 ‘난 그런덴 안 간다.’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형이 너무 행복해 보이길래 반년을 기다린 뒤에 다시 ‘성당갈래?’하고 말할 때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과연 성당은 신세계였습니다.
만일 제가 그때 형을 따라 성당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저는 신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저보다 더 똑똑하고 신앙심도 더 깊었던 형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사제가 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했을 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십년 뒤에 제가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께서 거절하시니 저는 출가가 아니라 가출을 했습니다. 형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성당에 다니게 된 것은 저의 선택이고 사제가 된 것도 저의 결단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저의 선택이 아니었고 사제가 된 것도 저의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선택하여 아들로 삼으시고 사제로 뽑아 세웠습니다.
오늘 복음의 첫 구절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스스로 광야로 나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분을 위험천만한 광야로 내보내셨습니다. 살아남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탄의 유혹이 가득찬 그곳으로 성령께서 예수님을, 그것도 그분의 뜻도 묻지 않고 내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천주교 신자가 된 부르심은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응답할지를 선택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참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광야로 내보내지셨고 거기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라고 왜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을 보면 그것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자렛 예수는 로마인이 쓸 십자가를 만들던 목수인 아버지 요셉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하여 외딴 곳에 살면서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가정을 꾸리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이때 자기 내면의 소리, 곧 성령의 부르심이 그에게 광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면서 자신의 부르심을 깨닫고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자들의 표적이 되어 십자가형을 받고 거기에 매달려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 하느님 아버지마저도 그를 버렸다고 느꼈을 때 예수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르심을 외면한 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유혹, 곧 최후의 유혹을 받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십자가를 온전히 받아 안음으로써 예수는 비로소 그리스도가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의 소리를 통해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먹고 사는데 바빠서 잊고 묻어 두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나는 무엇을 하도록 이 세상에 부름받았는가? 나는 왜 세상에 보내졌는가?” 이것은 쉬운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나 편안함과 안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내면의 소리가 요구하는 이런 위험한 질문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삶을 뒤돌아봤을 때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했다는 후회로 괴로워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장 자신다워지는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된 것, 사제가 된 것,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삶에로 부르셨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했습니다. 그러니 부르신 분을 생각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빽이시니 오히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때론 위험천만한 광야로 내보내시는 일이 될 지라도 시련과 유혹 중에 우리를 더 당당한 천주교 신자로 만드시려는 그분의 뜻을 알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며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넘어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그 뜻, 여러분 각자가 찾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은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기도와 절제, 그리고 자선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천주교 신자된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