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을 보내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은 “날씨가 이상하다.” “지구온난화가 아닌가?”하는 걱정이었을 것입니다. 날씨와 세상이 변하고 있고, 우리 삶도 거기에 맞춰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1독서에서 바오로가 말한 ‘재난의 시대’를 뜻하며,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곧 있을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 일어나지 않았고, 지금 우리 역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곧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태 16,28)는 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때”란 무엇입니까? 먼저 “시간”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시간은 있다가도 없는 것입니다. 시계와 달력, 계절을 보면 시간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시간은 보이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약속일 뿐이기도 합니다. 썸머타임을 생각해보면 절대적 시간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 존재를 규정합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은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서 특별한 시간, 결정적 순간인 “때”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안에서 특별한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던 때, 절친을 처음 만났을 때, 첫키스의 순간, 수녀원에 입회를 하던 날은 그냥 일반적인 시간, 지나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 개인에게 있어서 불멸의 시간, 영원으로 다가가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준비하고 맞이하는 시간, 더 나아가 기대하며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때”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 때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시간, 은총의 현존에 대해서 말해줄 것입니다. 제 모친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루는 병원 앞 정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몹시 그리워하셨죠?” “그렇지.” “이제 하느님께 돌아가시면 외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실 거예요.” 어머니는 미소를 띄셨습니다. “어머니, 혹시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 보셨어요?” 어머니는 크게 미소를 띄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온갖 꽃들이 만발한 밝고 화사한 정원과 같은 곳이란다.” 그 때,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이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때서야 비로소 어머니를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그 때”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때”를 알아보고 기다리고 찾아나서고 있습니까? 과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