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바쁩니다. 가장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 정신없이 일해야 하고,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경력과 스펙을 쌓아야 하며, 아이들은 방학도 없이 학원에 다니며 선행학습을 통해 미래를 준비합니다. 너 댓살 된 손자들조차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고 바쁘다고 하니 우리는 정말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삽니다.
예수님도 역시 바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전에는 회당에서 예배 드리고 가르치신 뒤에 좀 쉬기 위해 시몬의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 병을 고쳐줍니다. 그리고 해가 지자마자 온 마을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병든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고 하지만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써야 하는 이런 일이 밤 늦게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하면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어 좀 쉬어야 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현대인과 예수님의 차이입니다. ‘기도’말입니다.
한 아프리카의 탐험가가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는 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여러가지 장비를 옮기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원주민 짐꾼을 모으고자 큰 품삯을 제시하였고, 일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갔습니다. 목적지에 계획대로 다다르기 위해 짐꾼들을 재촉하여 갔는데 일곱째 날이 되자 짐꾼들은 한 걸음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긴 독촉 끝에 한 사람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저희는 계속 갈 수가 없습니다. 영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혼이 뒤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엄청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부유해졌지만 그 사이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렸습니다. 영혼이 물질적 성장을 뒤따라가지 못했기에 분열과 갈등, 반윤리적 범죄와 같은 영혼상실의 폐해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더 찾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으로 열심히 일하신 뒤에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시며 영혼이 따라 올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네비게이션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대부분 차에 있는 네비게이션은 전원을 켜면 잠시 후에 작동하는데 여러분은 그 작동 원리를 알고 계신가요? 네비게이션은 그 짧은 시간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구 바깥에 있는 인공위성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현재 위치, 가고자 하는 곳으로의 방향과 움직이면 속도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정신없는 가운데에서도 기도 안에서 네비게이션을 작동시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연결하셨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할지가 뚜렷해 진 것입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의 유혹을 대변합니다. 예수님은 원하시기만 하면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해 인정받고 인기를 누리고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안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가야할 방향을 뚜렷이 알려 주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합니다.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돼지와 같습니다. 오늘을 정신없이 살다보면, 한 달, 일년 그리고 어느새 평생이 사라져 버릴 것이고 세상을 떠날 때가 갑자기 닥치면 욥처럼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합니까? 바쁘다는 핑계만 대고 정신없이 사는데 익숙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모두 나를 찾고 있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명예를 누리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살면 많은 경우 좋은 결과를 얻겠지만 실패가 닥치면 크게 낙심하고 쓰러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힘이 없어 작은 시련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오직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안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수많은 실패와 불행 속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사탄은 내가 실패할 때마다 ‘이제 너는 끝장이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실패할 때마다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 늦은 시간에도 백안관에 만든 기도실에서 하느님께 겸손하고 간절한 기도를 바쳤던 아브라함 링컨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범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진정 잘 살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기도를 통해 단지 빨리가려는 속도보다는 바른 길로 가려는 방향을 찾고, 결과에 집중하기 보다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며, 능력보다는 태도가 중요함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인기와 명예에 휘둘림없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목적대로 살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각자의 네비게이션을 켜고 하느님 안에서 ‘나는 이 일을 하려고 세상에 왔다.’하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바쁘다는 핑계대지 말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