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있다가도 없는 것입니다. 시계와 달력, 계절을 보면 시간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시간은 보이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약속일 뿐이기도 합니다. 썸머타임을 생각해보면 절대적 시간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 존재를 규정합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은 나이가 들어 늙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간은 새로운 것, 낯선 것으로 미래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오히려 과거와 현재에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다가올 시간이 현재의 나를 바꾸어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는 과거에 내가 쌓아 두었던 것, 그리고 현재의 내가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다가올 시간은 현재 시간의 연속입니다. 시간은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통과해 미래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은 내일을 영원히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오늘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오늘은 어제의 오늘과 같은 오늘이 아닙니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Past is history; future mystery; present present. (과거는 역사이며 미래는 신비이며 현재는 선물이다.) 오늘은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 선물이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없음을 가르치며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에 대해 상기시켜 줍니다. 사순시기는 부활로 나아가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순시기를 자신의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절제를 많이들 하지요. 저도 한동안은 여러 가지 절제를 해 보았습니다. 술 안 마시기, 커피 끊기 등입니다. 그러다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절제보다는 자선의 실천에 중점을 둔 적도 있었습니다. 매일 일회 선행하거나 정해진 돈을 모아서 봉헌하기 등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이웃을 위해 나누자는 생각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나의 한 시간을 봉헌하여 이웃과 차를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또 한번은 매일 한 사람을 기억하며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순시기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얼마 전에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에서 히트한 노래가 있지요. “걱정말아요, 그대!”입니다. 이 노래는 오래 전에 전인권이 불렀는데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며 이 시대에 대해 어떤 것을 말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는 “걱정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늘 걱정합니다. 걱정에 짓눌려 살며 걱정을 야기하는 문제들과 씨름하며 삽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걱정하다보니 걱정하기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걱정없이 사는 날이 하루도 없다보니 심지어는 걱정이 없으면 걱정합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걱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걱정,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걱정, 이 두 가지입니다.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걱정은 걱정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되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걱정은 걱정하는게 시간 낭비이므로 그만 두면 됩니다. 결론은 걱정은 아예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없으면 걱정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시간을 정해 놓고 걱정하는게 좋습니다. 매일 한 시간씩 걱정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간동안 혼자서 걱정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걱정하면 어떨까요? 기도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걱정은 유혹입니다. 세상은 걱정을 부추겨서 자신의 이익을 챙깁니다. 광고나 소문 등으로 사람의 걱정과 불안을 조장하여 장사를 합니다. ‘이런 것을 먹어야 한다.’ ‘이런 준비를 해야 한다.’ 온갖 종류의 약이나 보험이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같은 광고는 몰랐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이런 걱정, 혹은 온갖 보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이라면 하느님의 섭리로 걱정과 어려움을 이겨낸 기억이 있을 것이고, 그 믿음으로 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복음의 기쁨을 살아라.” 장례식장에서 방금 온 듯한 얼굴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걱정의 유혹을 거슬러 기쁨을 찾고 전파시켜야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때때로, 많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행복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핑계와 불평거리를 찾으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기술 사회가 쾌락의 기회를 증대시켜 왔지만 기쁨을 낳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너무 많은 옵션(option) 때문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흐트러지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지요. 다람쥐를 보고 있으면 정말 100% 살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오직 살아남기 위해, 그것 하나만 신경쓰기 때문에, 오직 한가지에만 몰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도 오늘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 맡겨두고—이 말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선물인 오늘을 기쁘게 사는 일입니다. 하느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인 우리에게 요구되는 성실함이란, 바로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았는가?’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오늘이 오늘답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