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터목 산장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 이십년 전의 청년이 불혹의 나이로 변한 것 이외에 자연은 그대로다. 이십년 시간을 숙성시켜 산에 와서야 깨닫는다. 지난 방황이나 상처도 지금의 나를 만든 순간이었음을, 잊고 지나쳐 버리고 싶던 과거도 돌아보면 따뜻한 순간이 있었음을.
‘그래, 세상에 무의미한 방황은 없는거야.’…
연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젊은이들도, 자녀를 키우는데 부심하는 부모들도, 세상의 조류에 맞서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애쓰는 수도자들도, 교황님을 닮기를 꿈꾸는 사제들도 방황과 실패를 통해 조금씩 궤도를 수정해 가며 성장해 가는거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까지 이르는 육십리 길이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아도 눈 앞의 산을 넘으면 다음 길이 나타나듯, 우리 삶도 지금의 산을 성실히 걸어가면 저너머에 무언가 새로운 길이 있으리라.
사람은 그 크기만큼 세상을 담는다. 큰 산을 올라 호연지기를 키우면서 어려움과 시련을 통해서 인내심을 키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었던 선배들, 삶의 스승들, 이념에 젊음에 방황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먼저 이곳 지리산으로 왔고 난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이 볼 수 있다던 천왕봉 일출을 보면서 다시한번 마음을 담은 “내가 만일”을 노래한다.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사제로서!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으니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청년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아니? 이런 나의 마음을. 방황했던 청춘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