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라는 나라를 아시나요? 중앙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가난한 가톨릭 국가인데 제가 신학교를 다녔던 미국 클리브랜드 교구에서 오래전부터 선교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저는 신학생으로 한달동안 엘살바도르에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엘살바도르의 길을 걷다보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은 바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입니다. 엘살바도르 국민은 로메로 대주교를 아버지로, 목자로 존경하고 사랑해서 길거리마다 벽화로, 집에서는 사진으로, 그분의 얼굴이 담긴 옷을 입고 다닙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1917년에 태어나 1942년 사제가 되었습니다. 유학을 다녀왔고 조용하고 학구적이며 보수적인 그가 1977년에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의 대주교가 되었을 때, 많은 사제들은 실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엘살바도르는 14개의 가문이 전체 경작지의 60%를 소유했고,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엎은 대통령, 정치인, 군인, 경찰 등이 지주들을 보호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메로 대주교야 말로 권력을 가진 이들이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이 로메로 대주교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주교로 임명되고 3주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의 친구인 예수회의 그란데 신부가 가난한 소작인들을 위해 미사를 하러 가던 도중 암살단에 의해 살해됩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정부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정부는 그의 요구를 묵살했고 언론은 조용했습니다. 그러자 로메로 대주교는 산살바도르 대교구에 발표합니다. 그란데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는 날, 교구 전체에 오직 한대의 미사만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장례미사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호소합니다. “살인한 형제들이여, 당신들에게 말하노니,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하며 하느님께 당신들의 마음을 대신해 참회를 빕니다…이 자리에 모인 사제 가운데 한 명이라도 건드리는 것은 곧 나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만행과 박해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가난한 이들 편에 서서 빈곤의 문제와 사회 정의에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때문에 살해 협박에 시달렸고 그때마다 말했습니다.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엘살바도르 국민 가운데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살해 위협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그 순간 엘살바도르의 구원과 부활을 위해 나의 피를 하느님께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내 피를 희망의 표지와 자유의 씨앗으로 삼으소서!” 마침내 1980년 3월 24일 저녁, 병원 성당에서 암 환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던 도중, 군부가 보낸 무장괴한의 총에 맞아 로메로 대주교는 제대에서 숨을 거둡니다.
우리에게도 로메로 대주교 같은 분이 계십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그분은 1922년에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때문에 1951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사목과 유학을 다녀온 뒤 1968년 서울대교구 대주교가 되었고, 이듬해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임명됩니다. 서울대교구 취임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가난한 이들, 탄압받는 노동자,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명령으로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을 때를 회상하며 김수환 추기경은 ‘개인적으로 가장 고통을 겪었을 때가 그때였다면서, 사태가 그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지만 먹혀들어가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에는 추모 미사를 통해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라며 비판했습니다. 또한 6월 항쟁 때 명동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경찰을 투입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며 버티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독재정권과 불의에 맞서 사회정의를 추구했던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메로 대주교와 김수환 추기경은 닮았습니다. 이분들은 오늘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서’ 하느님의 사람들 마음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2018년 10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성인으로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로메로 대주교의 혈흔이 여전히 남아있는 그분의 띠를 매고 미사를 봉헌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릎쓰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이 길을 따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위협을 무릎쓰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며 모든 것을 내려 놓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십년전 오늘 수십만의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와서 그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인사와 예의를 표하려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생각만 해도 고맙고 힘이 되는 어른,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온 몸으로 가르쳐 주신 분,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법을 보여주신 그분은 오늘 복음 말씀을 사셨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보다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한 것처럼,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5.18 광주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자 무력진압을 지휘하고 세상을 떠난 수많은 목숨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전직 대통령은 아직도 이 땅의 법을 비웃으며 자신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5.18 광주민주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몇몇 정치인들과 그 동조자들은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웃고 배부르지만 슬퍼하고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같이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와 김수환 추기경님은 그 푸른 잎이 울창한 가지와 함께 번성하여 그 그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위로받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삶과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