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한심한 정치인들 이야기 말고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시합이었다. 옛날 386 컴퓨터로 내가 한 수를 두면 컴퓨터는 “Thinking…Thinking…Thinking…”하며 한참이 지나서야 그만저만한 수를 두곤 했었는데 이제는 세계 최고의 고수를 물리치는 알파고가 나왔으니 한 세대 만에 인공지능에서 위대한 진보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알파고에게 3연패를 당한 뒤 이세돌은 말했다. “인간이 아니라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다.” 그런데 제 4국에서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승리를 하자 사람들은 “이세돌이 아니라 인간이 승리한 것”이라며 기뻐하였다. 나 역시 인공지능의 상상할 수도 없는 계산능력에 맞선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의 승리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 씁쓸한 뒷맛도 있다.
천이백두개의 CPU로 0과 1의 연산작용을 통해 가장 최선의 수를 통계와 확률로 계산하도록 프로그램화 된 컴퓨터가 자기학습(Deep Learning) 과정으로 인공지능화 된다고 하더라도 컴퓨터는 물건일 뿐이다. 물건은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 지고 사용되는 것일뿐 어떤 관심, 나아가 존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멋진 차나 집 등을 자기자신인양 자랑하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다.
인간은 컴퓨터와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이용할 뿐이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다. 자동차와 인간이 달리기 경주를 하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모든 경우의 수를 순식간에 계산해 내는 컴퓨터와 바둑을 두지 않게 될 것이다. 그보다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나와 이웃은 내버려 둔 채 컴퓨터와 자기세계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볼 때 걱정스럽다. 최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사용자가 컴퓨터로 생성된 가상의 현실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역시 인간의 자기만족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깊은 주의가 요청된다.
알파고에게 이기고 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바둑을 두는지 모르는 컴퓨터를 상대로 ‘바둑’이란 것을 둔다고 말할 수는 있을까? 알파고는 바둑을 둔 것이 아니라 계산을 했을 뿐이다. 몰입의 즐거움이나 승패와 관계없는 뿌듯한 감정을 알 수 없는 기계에게 인간과 같은 지위를 줄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조심해야 할 것은 마치 알파고가 인류에게 신세계를 가져올 것처럼 우상숭배하거나 대재앙을 가져올 것처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계는 아무리 뛰어나도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닮을 수 없다. 효율성보다는 인간됨을, 속도보다는 성찰을, 확률보다는 가치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