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제가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사제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제가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제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내 놓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제가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마저도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들은 미친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섰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미친 짓입니다. 매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봐야 하는 것, 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하고 가슴을 치며 고백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친 짓입니다. 이 추위에 밖에서 떨면서 미사를 보거나 기도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친 짓입니다.
미친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고 부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바보 중의 바보가 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바보로 우리 곁에서 태어났고, 정확히는 이곳 남산동에서 태어났고, 우리 가운데에서 바보로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 계신데 누구인지 아시는지요?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던 그분은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이십니다. 늘 자신은 허물 많은 죄인이기에 하느님 앞에 나서기 두렵다고 말씀하신 분,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과 진리 앞에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신을 바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뛰어난 사람들, 능력있는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보다 우리는 바보의 삶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삶에서 1등 보다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바보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존경을 자아냅니다. 부와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를 성공으로 여기지 않는 바보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 모든 인간적인 것들보다 나누고 베푸는 바보의 삶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삶, 최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보처럼 우리를 위해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바보가 되도록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야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나 자신의 욕심과 목표를 내려놓고 나 아닌 타인과 하느님을 위해서 바보가 되어본 적이 없다면 그는 삶을 모릅니다. 죽지 않고서야 살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바보가 되지 않고서야 참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바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무엇인가에 몰두하거나 투신하는 사람, 세상의 눈에 미친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에게는 하느님만이 주시는 은밀한 보람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세상을 다 소유한 사람보다 더 평화롭습니다. 여러분이 바치는 기도의 시간이 때론 낭비인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겠지만 그런 바보의 삶은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평화와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사제로 사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의 눈에 미친 사람으로 여러분과 함께 오래도록 바보로 살고 싶습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고 세상에 한다한 사람들처럼 부와 명예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스승이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그분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혹시 제 친척이나 사람들이 저를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때에 저는 오히려 감사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