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어머니는 아들을 셋 두었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둘째입니다. 아버지가 장남이었으니 아들 셋은 큰 자랑이었고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집에서는 더 특별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딸만 셋 있었던 것도 한 몫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이 없어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자식 네 명 뒷바라지가 참 힘들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어 ‘왜 자식이 넷이지?’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도 있잖아!” 아마 이런 어머니를 위해서 형과 저는 방학이 되면 경북 풍기 시골집에 보내졌던 것 같습니다. 그곳은 제게 천국과 같았습니다. 시냇가에서 가재 잡으며 놀다가 오면 고모들은 늘 맛있는 것을 해 주었고, 삼촌은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태워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할아버지를 따라 큰 사과밭에서 노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농부이시며 사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홍옥, 국광, 아오리, 후지 등 옛날에는 사과 종류도 많았는데 그 모든 것을 제때 가지치고 약을 뿌리고, 거름을 주고 때론 한개씩 봉지를 씌우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제게 할아버지는 마치 사과 하나 하나의 이름을 다 아는 것 같았습니다. 사과를 저장하고 사람을 부려 가장 적당한 시기에 출하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 다니며 할아버지가 정성을 다해 사과를 마치 자식처럼 키우신다는 알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도 농부이십니다.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시며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도 깨끗이 손질하십니다. 포도나무를 자식처럼 아끼고 돌보시는 하느님은 적당한 햇볕과 물, 거름을 주어 포도나무가 잘 자라도록 키우십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을 수 없고, 포도나무 가지인 것을 불평할 수 없겠죠. 가지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포도나무를 통해 생명을 얻습니다. 언제나 포도나무에 머무르며 농부인 하느님 아버지의 돌보심에 의탁해야 합니다.
얼마전 사과나무 꽃이 활짝 핀 강가에서 멈춰서 그 꽃 앞에 서서 향기를 맡으며 생명의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때 이런 글이 떠올랐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점령했을 때, 영국군은 교회를 짓고 벽보를 붙이고 온갖 말로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살아있는 그리스도와 사랑이신 하느님을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인도에 마더 데레사가 갔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아무 말 없이 가장 가난한 도시 콜카타의 빈민가에 들어가 길거리에서 죽어 가는 병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교회도 짓지 않고 십자가도 세우지 않고 벽보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자신의 삶 안에서 드러냈을 뿐입니다. 장미는 설교가 필요 없습니다. 다만 향기를 퍼뜨릴 뿐입니다. 그 향기에 취해 벌과 나비가 찾아듭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오늘 2독서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면 설교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선교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친교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면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성당에 찾아올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는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깨끗이 손질하여 포두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었습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입니까? 많은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머무르면 우리가 청하는 것 무엇이든 그대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신앙 없이 사는 것, 지켜나갈 유산 없이 사는 것, 진리를 수호하고자 끊임없이 투쟁하지 못하는 것, 이는 사는 것이 아니라 겨우 목숨만 이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숨만 이어가서는 안 되고, 진정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열망, 곧 행복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강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양식을 얻고 다른 것들로 배를 불리지 않습니다. 시류를 거스르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진실로 행복할 용기를 가지십시오!”
군위성당은 군위읍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온갖 꽃이 아름답게 핀 이곳은 향기로 가득차 방문한 이를 기쁘게 합니다. 겉모습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산 위에 자리 잡은 교회이기에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야 합니다 (참조 마태 5,14-16). 그러면 사도행전의 말씀처럼 교회는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믿는 이들의 수가 늘어날 것입니다. 진실로 행복할 용기를 가진 이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