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토요일, 124명의 “살아있는 사람 13”이 군위 고로면이라는 낯선 동네에 왔습니다.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 생애 첫 10킬로미터를 뛰는 수녀님들, 젊은이들, 다섯 살 된 어린이부터 60대 어른까지 모두 다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모였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
군위마라톤은 경주나 춘천과는 다른 맛과 멋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들른 시골 마을회관에서 잔치가 벌어진 듯 레이스 시작을 앞두고도 서두르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마라톤 코스도 그리 가파르거나 어렵지 않았고, 달리는 주변은 가을날 시골 풍경을 느끼기에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42.195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의 운명을 맞이할 사람들이 없었기에 분위기는 한결 가벼웠습니다.
용꼬리보다는 닭머리가 낫다는 속담처럼, 큰 마라톤 대회에 가서 사람들에 치이며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곳에 있기 보다는 소박한 군위에서 환대와 대접을 받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누구나 느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영화 배경같은 멋진 가을 오후는 무거운 몸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마라톤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상동에 있는 ‘열무밭에 돈’에서 오십여명의 살아있는 사람들이 ‘삼겹살 파티’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육체피로와 영양보충에는 싱싱한 삼겹살에 소맥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지요. 마음 같아서는 실컫 저녁을 먹고 수성못을 한바퀴 돌며 분수쇼까지 보는 것이 제 바램이었지만 제 몸부터 ‘이제 그만 쉬자!’하는 바람에 깊어지는 저녁에 하루를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