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한가위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분위기가 오늘 여러분이 들은 성경에도 가득합니다.한가위는 풍성한 결실을 보고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때,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는 때, 따라서 한껏 배불리 먹고 놀라운 일을 한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즐거움과 기쁨에 찬 감사와 찬양만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한가위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한가위는 생명에 대한 감사와 함께 죽음을 생각하는 때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떠난 조상들, 부모와 지인들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미국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혹독한 겨울 날씨에 하룻밤 식사와 잠을 잘 수 있는 무료급식소에 어느날 노숙자가 양말도 안 신고 여름샌들을 신고 들어왔습니다. 그의 발을 유심히 쳐다보던 긴 코트를 입고 봉사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자신의 신발을 벗어 수녀님께 주며 여름샌들을 신은 노숙자에게 주기를 부탁한 뒤에 이내 밖으로 나갔습니다. 맨발로. “잠깐만요.” 수녀님이 뒤따라 갔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고 가시면 안되요. 밖이 추워요.” “저도 압니다.” 그 남자가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벗어 드린 겁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부유한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소출을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았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적이 없을 뿐입니다. 그는 탐욕스러울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경고합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12,15).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나의 성공, 나의 만족, 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스스로 살 수 없습니다. 벌거벗은 채 홀로 이 세상에 와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은 나 자신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탐욕에 빠진 사람은 거머리처럼 가질 수 있는 것들을 한껏 가지고 소비할 수 있을만큼 한껏 소비하다가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다만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한가지가 남는데 그것이 죽음입니다. 그가 아무리 재산이 많고 살아서 유명세를 날렸어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아무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루카12,20)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재화를 모으기보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 곧 남을 위해서 재화를 나누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우리 군위에서 가까운 의성 봉양 문화마을에 두봉 주교님께서 사십니다.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65년을 사셨으며 안동교구장을 지내셨고 지금은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동네 할아버지,예수님께 사로잡힌 사제로 사시는 분입니다. 저는 그분을 여러번 뵈었는데 만날 때마다 그분의 모습이 참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웃고 농담도 잘하고 마치 아이처럼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분이 쓴 책 “가장 멋진 삶”을 읽고는 알았습니다. 두봉 주교님께서는 매년12월 말이 되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통장의 잔고를0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한해동안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줍니다.자신을 비우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지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은 먼저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가난합니다. 그런 사람은 겸손합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알고, 세상에 있는 동안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줄 압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가난을 알아보고 나눕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사람다운 사람, 따듯한 사람으로 말입니다. 여러분은 죽은 뒤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습니까?
오늘 요한 묵시록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의 마지막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죽을 것이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요한묵시록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