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은 영원히 기억될 날입니다. 특별히 미국 사람들에게는. 평온한 오전, 갑자기 비행기 여러대가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날아 부딪쳤고 순식간에 맨하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미국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수잔(Susan)과 패티(Patti)도 있었습니다. 이 두 여인은 9/11 테러로 남편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 당시 두 여인은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이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사고가 난 몇 달 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 같은 아픔을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들처럼 남편을 잃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 특별히 테러범들과 연관이 있던 아프카니스탄의 미망인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9/11을 넘어서 (Beyond the 11th)”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아프카니스탄 미망인들이 불행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돕고 있습니다. 국경, 종교, 정치, 증오를 넘어서 새로운 삶에로 나아가는 이 두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하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은 같으니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 가운데에 서시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절망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요!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리고 숨을 불어 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신 숨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불어넣으신 생명의 숨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인 숨을 우리에게 불어넣으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자유와 용서의 새로운 생명의 숨을 주셨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성령,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 주는 성령, 마침내 우리 자신을 넘어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서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수잔과 패티가 보여준 용서가 바로 그들을 새로운 삶에로 구원했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을 느낍니까? 사람은 자신이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영을 통해 육체를 넘어서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그 성령을 통해 인간의 한계인 죄와 증오를 넘어서 용서와 일치에로 나아갑니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고해소에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고해실에 들어가는 것을 고문실에 들어가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사제에게 낱낱이 말한다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솔직히 고해성사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같은 체험을 늘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누군가 나를 정말 사랑하고 내가 늘 좋은 결정을 내려 잘 살기를 바라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나약함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고요. 그럴때마다 나의 마음이 아프고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을 바로 잡기가 두려워 자꾸 움츠려 듭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한 가운데 와서 ‘평화가 너와 함께’하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시며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용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해소의 문을 여는 것은 두려움에 움츠린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해소에서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고 죄를 지은 나를 용서하고 나를 죄짓게 한 이웃을 용서하면 예수님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사제의 사죄경으로 죄의 용서가 입 밖으로 말해지면 자비의 성령을 통해 죄와 증오, 두려움과 편견의 자신이 아닌 희망의 자신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고해소에 들어설 때 두려움에 떨던 자신이 고해소를 나설 때는 평화와 희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인 일이 쉬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하고 다같이 말해 봅시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하고 말한 뒤에)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러분에게, 죄책감에 슬퍼하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삶을 보여주시는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9/11을 넘어서’에서 만난 수잔과 패티처럼 우리 안에 증오와 미움을 키우기보다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편견과 증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안에 갇혀 있지 않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서로 다른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도록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는 서로 다른 모습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하나의 모자이크가 되어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죄인에게는 용서의 희망을 주고, 열심한 이에게는 위로를 주시는 성령께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다같이 우리 안의 성령을 통해 기쁘게 고백해 봅시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 “나는 이웃을 용서합니다.” / “나는 나를 용서합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