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화요일에 “시간의 종말”이라는 영화 시사회에 갔었습니다. 시간의 종말은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의 이야기입니다. 1831년에 유진길, 정하상의 편지를 받은 교황님께서 조선대목구를 설정하시면서 파리외방전교회에 사제 파견을 요청하셨습니다.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그곳에 누가 나서겠습니까만 엥베르, 모방, 샤스탕 신부님이 자원하셨습니다. 이 세 사제는 고생 끝에 1836년에 조선에 몰래 들어와 1839년 기해박해 때까지 목자로서 사셨습니다. 엥베르 주교님께서 관헌에 잡혀갔을 때 신자들은 모방, 샤스탕 신부가 도망가도록 주선하셨지만 오히려 이분들은 관가에 자수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풀어주면 너희 나라 프랑스로 돌아가겠느냐?’는 관헌의 말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러 이곳에 왔으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이분들은 참수형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 세 사제뿐만 아니라 계속된 박해에 순교하셨던 모든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의 삶은 한마디로 ‘선종’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선(善)생(生)복(福)종(終), 곧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사제들은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의 삶을 보며,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현세적인 것에 매여 잘못하고 실망하고 두려워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동시에 선생복종의 삶 앞에서 우리의 온갖 시련, 근심, 두려움, 걱정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처럼, 세상은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정치인, 비선실세, 부정, 폭력, 강압으로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세상 것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영악한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현실에서 영원을 생각하며 일상에서 죽음을 준비합니다. 착하게 살면서 복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부끄러울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적어도 자기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이웃과 하느님을 팔지 않습니다. 나아가 나 자신보다 더 큰 것, 곧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것을 내어주며 마침내 죽기까지 그 길을 걸어 선종의 은혜를 얻도록 늘 기도하면서 준비합니다.
아름다운 가을에 ‘선생복종’을 꿈꾸니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계절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아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주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지나가는 세상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변치 않는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