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몇 시입니까? 시계를 보고 계시죠. 시계에 나와 있는 것이 시간인가요? 그 숫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입니까? ‘시간 좀 있나요?’하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시간은 물건처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썸머타임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있는데 여름이 되기 전 어느날 우리는 잠들기 전에 모두 한 시간씩을 더 빨리 가게 해 놓고 잠듭니다. 그런 밤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한 시간 잠을 덜 자기 때문이죠. 그런데 썸머타임이 끝나는 날이 되면 한 시간을 거꾸로 돌려 놓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듭니다. 한 시간을 더 잘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시간은 댕겼다가 늦추었다가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인가요? 절대적인 시간, 변치 않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우리는 시간 안에 존재합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몇 살임을 빠트리지 않는 것을 보면 시간은 우리를 형성하고 존재하게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 같은 시간을 다르게 체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탔다면 서울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일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차를 시어머니와 함께 탔다면 시간은 마치 한티 고개를 걸어서 올라가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갈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같은 시간을 느끼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릴 때는 어서 커서 어른이 되고 싶은데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는지 답답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손꼽아 기다려도 시간은 비둘기호처럼 천천히 가는 것도 모자라 역마다 다 서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시간이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무궁화호, 새마을호로 업그레이드 되더니 이제는 KTX를 타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빨리 달리기 시작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일주일이나 한달이 지난 것 같고, 종종 만나는 조카를 볼 때마다 한 두 살씩 더 먹는 것 같습니다. 이제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두 가지 종류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카이로스(Kairos), 특별한 시간, 운명적 시간, 결정적 시간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크로노스 안에서 카이로스를 발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똑같은 일상에서 특별한 순간을 발견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오늘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도 시간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시간을 잘 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 궁금함에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핧아 먹으십시오.”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갈 수 있었을 때 영국의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삼개월을 살았습니다. 오후에 시간이 나면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심지어 노인들까지 모두 똑같이 아이스크림을 핧아 먹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정성을 들여 천천히 핧아 먹고 있었습니다. 남의 눈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 앞에 주어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행복한 순간을 늘릴 수 있는만큼 더 늘리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눈 앞의 현재에 충실해야 그 맛을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을 자꾸 떠올리며 자책감에 자신을 비난하고, 현재의 모든 일을 과거 잘못의 결과인양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매여 살고 있습니까? ‘만일, 어쩌면’ 하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시대는 악한 때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자꾸 걱정과 불안을 부추겨서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더 큰 행복을 위해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해 보이지만 그것 때문에 현재를 망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래의 안전을 보험이나 투자로 보장하라고 하면서 현재를 충분히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과거와 미래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핧아 먹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좀 여유를 느껴보라고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생애 최고의 순간이며,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술에 취해서 방탕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모든 일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살겠습니까? 이것이 주님의 뜻이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오늘이 내 인생의 최고 날임을 깨닫고 감사드리는 것,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사랑한다, 고맙다’ 하고 말하는 것, 하느님 없는 나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시간, 특별한 시간, 카이로스를 가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