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이라도 잊혀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입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 몇 해가 흘렀지만 자주 생각나는 때가 있습니다. 성모당에서 성체분배를 하다가,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방에서 우연히 쳐다본 가족사진에서 어머니라기 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더 또렷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신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유대인 속담이 아니더라도 어머니 없는 우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으로 만들어질 때부터 아홉달 동안 뱃속에 품고 다니고, 산고의 고통을 겪고 낳은 뒤에는 제대로 사람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온갖 정성으로 돌보아야 하는지 그렇게 살아보지 않고서는 저나 여러분 역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엄마는 우리 존재의 기초이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엄마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매일 본당, 성모당에서 기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들 각자의 필요를 대신해서 기도합니다. 종종 생면부지의 사람을 성당으로 이끌어 세례까지 받게 합니다. 신학을 배운 사제인 저보다 더 하느님에 대해 깊이 알고 계심에 놀랍니다. 온 몸으로 신앙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우리 존재의 희망이자 신앙의 종착점입니다. 저도 엄마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을 주는 존재, 남을 위로하는 마음, 늘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는 모습을 닮아야겠습니다. 엄마에게서 받은 생명과 신앙을 살고 키우고 전해주어야 합니다. 몸으로 자식을 낳지 못한다면 마음으로라도 자식을 낳아 기르며 엄마가 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엄마를 준 이유일 것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사랑과 관심으로 키우고, 마침내 아낌없이 자신마저 내어줄 때 우리 역시 성모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 아들을 잃으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흔들림이 없었던 어느 어머니에게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진리를 봅니다. 세상을 떠났든, 아직 우리와 함께 계시든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빚을 진 것 같습니다. 엄마처럼 살아야겠습니다. 히스테리 부리는 노처녀나 편안한 이모나 고모, 동네 아줌마가 아니라 엄마가 되어 시련을 겪고 있는 자식에게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차 여자다운 마음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아 주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엄마가 무척 그리운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