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어떤 사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기도하더라도 죄를 짓습니다. 제가 강론하더라도 죄를 짓습니다. 제가 사목하고 거룩한 성찬 전례를 집전하더라도 죄를 짓습니다. 제가 회개한다 할지라도 그 회개는 회개할 또 다른 이유를 만듭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제가 싫어하는 일을 하고, 주님께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렇게 죄 때문에 매번 넘어지는 저는 ‘눈먼 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늘 복음 말씀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루카 6,39)
그렇지만 이것이 저의 한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그렇다면 이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입니다…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로마 7,15-24).
사도 바오로나 저처럼 우리 모두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근본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처럼 살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길 원치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며 주님의 섭리 안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믿으며 하느님 없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자만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의 반대인 ‘교만’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주님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왜 하느님을 만나러 오는 이들에게 기쁨이 지속되지 않을까? 한때 열정적이던 신앙인이 왜 금방 지칠까? 저는 이런 질문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존재인 우리가 자신의 가난함을 잊고 교만한 것, 곧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네 이웃을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합니까? 대부분 우리의 즉각적인 반응은 ‘나는 내게 잘못한 사람을 한번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일곱번은 말도 안되지!’ ‘예수님이나 그분의 진짜 제자들이야 그렇게 용서할 수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자기중심의 말씀 해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용서를 잊지 말고 계속 용서하라’는 말씀이지 우리에게 죄책감이 들도록 만드는 말씀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사순시기가 오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이번 사순시기를 “예수님 중심(中心)잡기”라고 정의합시다. 그동안 나 중심, 자기중심, 사람중심의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번 사순시기를 통해 예수님중심, 하느님중심으로 변화되도록 연습하는 시기를 보냅시다. 저는 이 시기가 행복연습시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 예수님이며, 우리는 그분을 닮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느님도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한다.”
‘예수님 중심’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봅시다. 중심(中心)은 무엇을 마음 한가운데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존재 한가운데 두고,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아침과 저녁, 우리의 모든 것에서 예수님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예수님께 충성하기’입니다. 중심(中心)의 중(中)과 심(心)을 한 글자로 모으면 충성스러운 충(忠)이 됩니다. 예수님께 충성스러운 제자가 되는 것이 사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충성(忠誠)을 좀 더 살펴봅시다. 예수님께 충성한다는 뜻의 정성 성(誠)은 곧 말씀(言)이신 예수님을 이루는 것(成)으로 말씀이신 예수님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드러낸다면 이것이 가장 의미있는 사순절이 만들 것입니다. 우리 다함께 예수님께 충성하는 사순절을 삽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느날 자신의 죄 때문에 슬퍼하는 레오 형제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레오 형제, 마음의 순수함, 곧 죄없는 상태에 그렇게 집착하지 마세요. 눈을 돌려 예수님을 보세요. 그리고 그분을 찬미하세요. 마음이 순수해 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일단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면 더 이상 그대 자신을 보지 마세요. 그대의 완전하지 못한 점을 찾아내어 슬퍼하거나, 자신이 죄에 물들어 있는 자라고 평가하는 것은, 구원자이신 주님보다 자신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의 눈길을 돌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은총, 그분의 자비를 바라보세요.”
바로 이것이 예수님 중심입니다. 자기중심, 사람중심의 자책과 어둠에서 예수님중심, 하느님중심의 해방과 빛으로 나아갑시다. 그럴 때 사도 바오로의 오늘 고백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게 사순시기를 보낼 때 우리가 맺는 열매는 곧 우리가 어떤 나무인지 사람들에게 드러낼 것입니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그러므로 예수님중심의 사순시기를 준비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순시기를 살아봅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았던 어느 사순시기와도 다른 새롭고 벅찬 사순시기가 곧 시작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