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 죽은 열사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다.”
열사는 오늘을 사는 사람, 내일을 꿈꾸며 어제 죽었지만 그 때문에 모든 것을 바쳐 오늘을 살다가 떠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늘의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영광이나 상처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도, 혹은 내일의 희망이나 꿈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도 오늘밖에 살 수 없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만 있을 뿐입니다. 어제는 지나가버린 과거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신비이며 오늘은 선물입니다. 현재라는 선물, Present로 주어진 시간이 오늘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신 과거는 떠나 보내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은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 드리고, 오늘을 잘 살아갑시다.
사람은 영원을 알지 못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는 존재는 영원을 상상하며 희망할 뿐입니다. 한가지 영원에 관한 진실은 영원도 오늘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죽음 후의 삶도 오늘부터이며 영원한 생명도 오늘의 생명이 기초가 됩니다. 오늘 설이라는 시간을 통해 고향이라는 장소에서 만나는 가족이 시간안에서는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감사하며 오늘 사랑하며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고보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야고 4,14-15).
참으로 옳은 말씀이 아닙니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인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셔야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입니다. 어떤 신부님의 말씀처럼, “사람들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시간과 열정을 낭비한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사랑하는 것 뿐인데…”
그렇습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이런저런 일이란 우리가 살아있을 때에야 할 수 있고, 우리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원하셔야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저런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갑니다. 마치 우리 목숨이 그것에 달린 것처럼, 마치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시는 것처럼!
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번 놓아 버립시다. 아무리 중요한 일도 이런저런 일일 뿐입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일은 없고, 주님의 뜻을 거슬러 할 일이란 필요조차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때는 죽을 것 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나고 보면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었음을 얼마나 많이 깨닫게 됩니까? 그때는 정말 그렇게 걱정스럽던 일이 지나고 보면 아무 걱정 안해도 될 일이었던 경우는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을 삽시다. 영원을 행복하게 사는 첫 걸음, 오늘을 잘 삽시다. 오늘은 설날, 말 그대로 낯설고 조심스러운 새해 첫날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것도 아닌 내게 거저 주어진 새로운 한해의 첫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낯설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오늘 새해 첫날을 잘 살아봅시다. 낧고 묵은 옛 감정과 상처는 떠나 보내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은 걱정하지 말고, 오늘 설날을 정성스럽게 살아낸다면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도 그처럼 될 것입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오늘을 기념하며, 떠나간 이들이 남긴 유산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오늘 감사하며 오늘 사랑하며 오늘 주님의 일을 합시다. 그때 이렇게 축복받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아멘!
(신자들은 일어서고, 사제는 세배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