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내 것,” 즉 내 소유, 내 능력, 내 사람, 내 이익만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희망의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라는 표현입니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내” 아버지 혹은 “내” 어머니, 또는 내 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집 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한국사람의 표현에는 나보다 우리,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남자, 곧 우리 아버지의 다른 이름은 요셉일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대도시에 가서 일하다가 결혼을 한 뒤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의 성실함은 한 가정을 지키는 등불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저녁이면 어머니는 놋그릇에 담은 밥을 아랫목 이불 아래 넣어 두고는 온 가족이 우리 아버지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른바 “경상도 사내”이기 때문에 말수도 적고 자기 표현도 잘 하지 않으셨지만 험한 일로 굳은 살이 박힌 우리 아버지의 손은 늘 가족을 지키는 든든함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이끌어주시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은 요셉, 정의롭고 성실한 가정의 버팀목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여자, 곧 우리 어머니의 다른 이름은 마리아일 것 같습니다. 그녀가 우리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어떤 분이셨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로서 그녀는 가족 모두를 말 그대로 먹이고 입히고 보살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사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쉬지 않고 움직이며 가정을 만들어 가는 분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편이 되어 주셨고 아버지와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이름은 마리아, 따뜻하고 성실한 가정의 빛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한 가정의 자녀들이며, 지금은 가톨릭 신앙 안에서 ‘사랑과 친교의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집이 있는 것처럼, 우리 성당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을 만나는 것은 우리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우리 성당이 바로 성가정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가정은 신앙이 깊지 못하고, 문제가 있기에 성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성가정에 우리 집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것, 자식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성가정이 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생각해 봅시다. 목수였던 요셉은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 성실한 사람이었고, 마리아는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펼쳐지는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며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였으며, 예수님은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걷는 자녀였습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던 일과 그때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한 말을 생각해보면 자식을 키우기 어려운 부모의 심정을 마리아와 요셉도 겪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가정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오늘 바오로 사도는 아주 구체적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가정생활’에 대해 말합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집이 성가정이 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혹시 그렇게 말했는데도 여러분이 못 알아들을까 염려한 바오로 사도는 각자에게 행동지침까지 줍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새해에 가장 바라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우리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자 모두 건강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우리를 하느님에게로 이어주는 따뜻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자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성가정의 일원이기에 우리 집 역시 성가정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성가정을 이루고, 사람들은 우리 집을 보며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고 찬미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자식으로서 우리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사랑을 입고 서로 용서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가정의 일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