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제안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한 바구니에 가득 담아 놓고 누구든지 달리기를 해서 먼저 그 바구니에 도착한 사람에게 그 음식을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시작을 외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구니에 함께 다다른 아이들은 모두 둘러앉아 웃고 재밌게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는 ‘1등을 하면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는데 왜 너희는 손을 잡고 같이 뛰었느냐?’하고 묻자 아이들이 함께 외쳤습니다. “Ubuntu!” 그리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한 사람이 음식을 다 가지면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모두 슬플텐데 어떻게 나 한 사람만 즐거울 수가 있는거죠?”
우분투(Ubuntu)는 아프리카 말로 경쟁사회에서는 무조건 남을 이겨야만 한다고 배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나아가 우분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남을 용서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342년이나 지속되었던 흑백인종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다가 27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온갖 고통과 죽음의 위협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넬슨 만델라는 마침내 1990년 국내외 여론에 못이긴 남아공 정부가 그를 석방함으로써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를 감옥에 가둔 백인뿐만 아니라 모든 적들을 용서하고 화합과 번영을 위해 함께 일하자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넬슨 만델라는 말했습니다.
“내가 감옥 문을 뒤로 하고 자유를 향해 걸어갈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안의 모든 억울함과 분노와 미움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있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아가 넬슨 만델라는 그를 미워하고 박해하고 감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고 믿었습니다. 곧 ‘그대로 인해서 내가 존재한다(I am because of you)’는 우분투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와 너의 만남, 곧 너를 통해 비로소 내가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삶은 만남이다.”하고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말했습니다. 너 없이 내가 있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나 없이 너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에게 열려 있는 나와 너가 우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모든 만남의 연장선은 영원한 너, 곧 하느님에게로 향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혼자일 수 없습니다. 혼자만의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 성령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이야말로 사랑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드러내 줍니다.
신학교에는 ‘산책을 할 때는 둘이 하지 마라.’는 규칙이 있습니다. 마음 맞는 두 사람끼리만 다니면 공동체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책을 할 때에는 셋 이상 해야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혼자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지만 두 사람끼리만 사랑한다면 그 사랑에는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아낌없이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준다면 그 사랑의 결과로 자녀가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가정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느님 역시 창조주 성부와 구세주 성자를 엮어 주는 사랑의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과 나는 무슨 관계인가? 삼위일체 하느님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그 사랑에로 부르십니다. 우리 역시 사랑의 공동체에로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이끄십니다.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참된 사랑에로 초대하십니다.
제가 신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당장에 대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야야, 니가 결혼을 안한다 카던데 그게 사실이가? 남자는 결혼을 해서 자식을 많이 놔야 인간이 되는데 니가 어쩔라고 그카노?” 그 말씀은 사실입니다. 저는 혼자만의 사랑을 위해 사제가 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봉사하고 나아가 예수님처럼 아낌없이 줄 수 있기 위해 사제가 되었습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여러분이며, 여러분과의 만남으로 저는 더 깊은 사랑에로 나아갑니다. 때론 유아세례를 주어 영적인 자녀를 낳기도 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혼을 증언하기도 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세상을 떠난 분들을 하느님께로 돌려 보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랑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분투, 곧 저를 지금의 제가 되도록 만드는 만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할머니의 말씀은 틀렸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많은 자식을 놓고 기르면서 성숙한 인간, 곧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갑니다. 매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경을 그을 때마다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은 제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와 함께 하겠다.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