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주신 것은 근본적인 복, 최초의 복이라 부를 수 있으며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원복(Original Blessing)’이라고 부릅니다. ‘원죄(Original Sin)’에 익숙하고 그 어둡고 우울한 사실만을 계속 듣고 산 신자들에게 원복은 생소합니다. 하지만 원복은 인간이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짓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하는 성경의 말씀은 원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는 복을 가득히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시므로 그 사랑이 넘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복덩이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아담을 가엾이 여겨 하와를 만들어 주시어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하나되는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둘 다 발가벗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로 받아들여지고 창조된 모든 것이 하느님 은총 아래 평화로웠습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의 시작에는 ‘원복’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 여러분은 부모에게 복을 가져온 것뿐만 아니라 가족, 더 나아가 인류에게 복을 가져왔으니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각자는 ‘원복’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과연 이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까?’하며 기대하며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욕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히면서, 달리 말하면 원죄를 지은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느끼며 죄가 우리 안에 자라게 되어 우리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원복을 주신 분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소외되고 외롭고 공허하고 무기력한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을 회복합니다. 집을 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탕자처럼 하느님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모든 신앙의 시작은 ‘축복’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해내야 하고,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던 삶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도록 맡기고 자신은 그저 사랑받는 아들 딸로 겸손히 살겠다고 고백하면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축복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죄많은 세상을 축복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서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에는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복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신앙은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찾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말합니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던, 이 종교를 믿든 저 종교를 믿든,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이며, 우리 삶은 행복을 향해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가지면 행복할까 싶어 더 소유하려고 노력하고, 더 성공하면 행복할까 싶어 더 성취하려고 애쓰고, 더 존경받으면 행복할까 싶어 더 큰 명예를 추구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압니다. 더 소유하고 더 성취하고 더 명예로워지는 것이 행복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가장 많이 소유하고 가장 많이 성취하고 가장 높은 사람이 불행한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찾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17세기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 방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오락거리, 소일거리, 주점부리가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없으면 우울해집니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 봅니다. 우리는 행복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바로 성모 마리아입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예수님 잉태, 구유에서의 출산, 이집트로의 피난 등 생각만해도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마리아는 오늘 아기를 찾아온 목자들의 말을 듣고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셨겼습니다.’ 마리아는 조용히 혼자 머물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진정한 신앙인으로 불리움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것처럼 성모님께서도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다.행복한 사람은 누구나 ‘나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의로운 사람, 성인, 거룩한 순교자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다.”
행복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사람, 하느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행복은 짧습니다. 잘먹고 잘자고 잘쉬어 기분이 좋은 것은 어려움을 헤쳐내고 성취한 것에 대한 만족감에 비할 것이 못됩니다. 하지만 이런 자기만족조차도 하느님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깊은 평화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창조주의 은혜를 느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를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높은 행복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복이란 바로 축복과 은혜와 평화의 삼종 종합선물세트입니다. 새해에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축복의 삼종 종합선물세트는 성모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보여주신 삶의 열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시며, 신앙인의 길이 ‘은혜’이며, 마침내는 하느님 안에 ‘평화’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참된 복을 원하십니까? 성모님처럼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기도하십시오. 참된 은혜를 받고 싶습니까? 성모님처럼 고백하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저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깊은 평화를 누리고 싶습니까? 성모님처럼 늘 예수님과 함께 하십시오. 예수님을 잉태하신 것만이 아니라 늘 기도안에서 함께 하시며 십자가 아래에까지 끝까지 함께 하셨던 성모님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참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성모님처럼 그분을 가장 좋은 곳에 모시고 사랑으로 보살피며 소중히 간직하며 곰곰이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상상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새해에는 축복과 은혜, 평화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