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특별하게 시작했다. 오랜 친구의 종신서원식을 위해 12월 31일 오후에 충북 보은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녀원으로 향했고, 새해 첫 아침에 종신서원미사를 봉헌했다. 손님은 오직 한 사람 나 뿐이었고, 종신서원자는 친구 뿐이었다.
참고로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1084년 성 브루노에 의해 창설되어 철저한 봉쇄와 침묵, 고독 안에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다. “세상은 변하지만 십자가는 변하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천년 가까이 초기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톨릭 수도회 가운데에서도 가장 엄격한 수도회로 알려져 있다.한국에서는 2005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 (Into Great Silence)”으로 알려졌으며, 카르투시오 수녀원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2002년이다. 주님탄생예고 카르투시오 수녀회의 두번째 한국인 종신서원자가 바로 친구 수녀님이다.
종신서원식은 성인의 유해가 현시된 제대 앞으로 종신서원수녀가 나아가 몸을 깊이 숙이며 노래를 하며 시작되었다. “Suscipe me, Domine, secundum eloquium tuum, et vivam; et non confundas me ab expectatione mea.”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아주소서.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주님은 제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이어서 공동체가 번갈아 세 번을 반복한 뒤 영광송을 노래했다. 그리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예식이 이어졌다. 종신서원수녀가 원장수녀 앞에 무릎을 꿇고 “원장 수녀님,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그리고 차례로 공동체 수녀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수녀님,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종신서원수녀는 서원문을 낭독하며 ‘정주, 순명, 삶의 전향’을 종신토록 서원했다. 주례사제는 이어서 제대에 엎드린 수녀를 강복하고 성수를 뿌렸다. 이로써 종신서원식은 끝이 났다.
단순함, 충실함, 그 안에 있는 절제된 열정이 느껴지는 미사였다. 침묵 가운데 온전히 흡입되어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놀랍고 기뻤다. 종신서원미사 후 모든 수도자들은 예전처럼 침묵과 고독의 독수처로 돌아갔다. 사진도, 축하식도, 잔치도 없었다. 잠시라도 수도생활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카르투시오 수녀로 살게 된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수녀님의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즐거움이나 감동은 없지만 깊은 유대와 성찰, 평화가 느껴졌다. 그 모습에서 수목한계선에서만 자라는 가문비 나무가 떠 올랐다.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며 조금씩 자라는 가문비 나무만이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드는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깊은 공명은 오직 침묵과 고독을 안고 자란 사람에게만 허락된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짧지만 특별한 1박 2일을 보내고 돌아오니 세상에서 허덕이는 내가 보였다. 세상 사람들처럼 분주하고 탐욕스러운 내가 과연 자비의 해를 잘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인자하신 아버지의 얼굴인 예수님을 닮고 보여줘야 하는데 ‘나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반성하고 고민했다. 한가지 깨달은 것은 내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더 주의를 기울이며, 더 사랑하고, 더 성실히 기도하고, 더 기뻐하며, 더 남을 돕는 길 이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이 모습에서 용기를 낼 뿐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먼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