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젊었습니다. 열의와 자신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제 눈 앞에 있는 인생은 성취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었습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관에서 일을 시작했고, 덕분에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승진을 거듭해 세관장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은 과제가 아니라 훨씬 어려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부러워하지만 정작 제 자신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호했고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이 점점 두루뭉슬해졌습니다. 한때 사람들의 시기와 부러움 속에서 계속해서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여전히 가지지 못했던 것들, 알 수 없는 것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비난과 부러움 역시도 시간이 지나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성취나 성공, 안락이나 재산만이 아닌 다른 무엇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허망함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제 키가 더 작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에게 지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애쓸때는 작은 키가 무기였는데 모든 것을 놓고 보니 자신은 볼품없이 키가 작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훌륭한 선생님이며 위대한 예언자이기도 한 그분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제 안에 갇혀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관심을 준 적이 없었지만 그분만큼은 뵙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을 풀어줄수도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관을 떠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 일이 아니면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일 뿐이죠.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서 예수님을 보기라도 하기 위해 돌무화과 나무를 올라갔습니다. 어릴 때 자주 올랐던 나무,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던 나무, 그 나무에 오르니 다시 예전처럼 아이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분이 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걸어가시는 그분을 나무 위에서 내려다 볼 뿐이었습니다. 제 속에 담긴 말이 목까지 올라찼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그때 그분이 갑자기 멈추시더니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그냥 다른 것을 보시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분은 저를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제 눈을 쳐다보실 때 갑자기 온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다정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너의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카 19,5).
그 다음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워 혼을 쏙 빼놓을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손을 잡고 걸으셨고 제 집에 오셨고 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분은 마치 오랜 친구를 찾아오신 것처럼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일어나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곱절로 갑겠습니다” (루카 19,8).
그분은 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루카 19,9-10).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인생은 돌무화나무에서 내려올 때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내려갈 때 지금까지 제 인생이 덧없었다는 것과 아무것도 아니었던 저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의 가치는 소유나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는 인생에서 어떤 것이라도 붙잡고 싶어 무작정 열심히 살았는데 그 길에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을 때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현재 속에 사는 법을 배우며 인생은 한번에 한장씩 넘기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저는 인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 가족을 돌보며 이웃에게 도움을 주며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단순한 삶입니다. 욕심과 이기심, 비교와 시기 속에서 다시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며 올라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때는 그날 돌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저를 부르시며 내려오라고 손짓하시던 주님을 떠올립니다. 내려가는 길, 놓아버리는 길, 낮추는 길이 참 삶의 길임을 되새깁니다.
“예수님, 저를 당신 것으로 소중하게 여겨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도 그 마음으로 작지만 중요한 제 삶을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