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개봉된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를 보면, 주인공인 트루먼(짐 캐리 분)은 현실처럼 꾸며진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 살고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트루먼의 모든 삶은 스물 네 시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쉬지 않지 방영되는 유명한 쇼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점차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삶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고난을 겪으면서 마침내 스튜디오를 떠나는 ‘Exit’을 선택하게 됩니다.
영화 트루먼 쇼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먼저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입니다. 마치 트루먼처럼! 세상 사람들과 모든 일은 주인공인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인생이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은 시련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찾아야 하고 그 길에서 용기를 내어 ‘자신만의 인생’을 선택해야 합니다. 트루먼이 영화처럼 한 평생을 주인공으로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영화같은 삶, 곧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거짓 삶을 버리고 자신만의 진실한 삶을 위해 ‘Exit’를 선택합니다.
저에게도 트루먼과 같은 인생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그 중심에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즐겼던 시기입니다. 특별한 실패나 좌절, 시련없이 대학에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세상 사람들처럼 대기업에 취직해서 가정을 꾸릴 기대를 하고 있을 때 뭔가 이상한 일,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때는 1997년, 저는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한 대학교 3학년이었고 별 무리 없이 선배들처럼 대기업에 취업하리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IMF 구제금융이라는 폭탄이 터졌습니다. 격동의 1997년을 지나자 당연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암울한 1998년이 찾아왔습니다. 신규 채용이 전혀 없는 대한민국을 떠나 중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난한 중국인 십대 소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이익을 내는 회사에 다니며, 현지 중국인들이 두려워 혼자 밖을 나가지 못하는 곳에서 성당마저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난과 시련은 과거에 당연하게 꿈꾸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탈출(Exit)하도록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1998년 11월에 우여곡절 끝에 퇴사를 하고 1999년 2월에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제서야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나만의 인생이야기’를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학교 입학을 준비할 때 집에서는 반대가 심하여 어쩔 수 없이 ‘출가’가 아닌 ‘가출’을 하여 후배 집에서, 그 다음에는 성당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때 선배 학사님이 저에게 읽어보라며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어느 인생 이야기’, 곧 소화 데레사 성녀가 쓴 자서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의 이야기를 ‘어느 인생 이야기’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그 즈음 저 역시 영화 속의 트루먼처럼 나만의 인생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찾고 있었는데, 그 때 소화 데레사 성녀의 ‘어느 인생 이야기’가 어두운 밤에 빛나는 북극성처럼 다가왔습니다.
15살에 갈멜수도회에 입회하여 24세에 결핵으로 죽기까지 짧은 생을 산 소화 데레사의 삶의 이야기는 작은 길을 통해 위대한 사랑에 다다르는 순수한 영혼의 이야기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성인이 우리 가운데 가장 작게 살다가 가장 조용히 세상을 떠난 영혼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작은 길’은 어린이의 거룩한 길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아이에게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성녀는 특별할 것 없는 삶에서 그저 매우 친절하고 단순하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놓지 않고 평화를 간직하며 오직 하느님 아버지 안에만 머물려고 한 아이였습니다. 그 때문에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마태 18,4)이 어떤 사람인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많이 사랑하기 위해 애쓴 소화 데레사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것이 가장 작고 하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는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온전한 사랑에의 초대에 대해 자신의 모든 것으로 응답한 성녀의 삶은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사랑을 전하는 교회의 심장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고 큰일을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전기의 주인공이 목표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란 자신의 길을 걸으며 하찮은 일을 꾸준히 최선을 다해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소한 일을 온 마음으로 해 낼 수 있는 힘이 있는데 그것이 어린이의 마음입니다. 온전한 의탁과 사랑, 겸손과 순수, 우리는 이것을 소화 데레사의 삶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런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갈망합니다.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용기, 그저 더 깊이 사랑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선택할 때 그 삶은 어느 인생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신 있는 이야기이며 누군가에게라도 들려주고 싶은 나만의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