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이다. 나른한 오전, 바깥은 햇살로 빛나고 바람소리는 매섭다. 아무 계획도 없이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지금은 막간의 시간, 무위의 날,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안식일, 곧 ‘피로의 날’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엿새동안 창조하시고 이레째 되는 날을 쉬면서 거룩하게 하셨다. 그래서 인간 역시 과도한 활동, 멈출 줄 모르는 충동, 짜증과 극단적 피로에서 벗어나 무장을 해제하고, 피로한 자의 길고 느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시쳇말로 다람쥐 쳇바퀴에서 나와서 ‘이건 아닌데’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은 ‘피로의 영감(inspiration)’이 없다면 인간은 서서히 탈진하고 급기야는 자신이 아닌 약물로 목적을 이루려는 유혹이 넘치는 ‘도핑(doping)사회’로까지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멈춰서서 사색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이것이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처방전 중에 하나이다. 모든 목적과 염려에서 해방되어 차별없는 사랑, 우애의 공동체 안으로 녹아들 때 인간의 자아는 위로받고 치유받고 회복된다. 이것이 ‘피로의 종교’이다.
이것이 가톨릭 성찬례의 본질이다. 매 주일 거룩한 식탁에서 하느님이 사랑때문에 인간이 되신 최고의 이야기와 가장 귀한 음식을 나누며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이 안에서 고독한 피로, 파괴적 피로, 탈진을 가져오는 피로를 놓아버리고 하나의 화음을, 친근함을, 사랑을 느끼며 참으로 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치유적 피로’이다.
거룩한 주일인 오늘, 그대는 어디에서 어떻게 피로를 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