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교수의 작은 철학책 ‘피로사회’는 가히 놀라운 통찰력으로 우울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이에 몇가지 주제로 논의의 장을 열어본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자신을 경영하는 사람”으로 불리우고 싶어한다. 개인은 더 이상 규율에 복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 통제하고 만들어가는 ‘성과주체’가 된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가 되었고,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오직 개인의 능력, 성과, 자기주도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규제와 억압의 철폐, 개인적 욕망의 긍정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자기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마모시켜간다. 아무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한다. 그 결과 일과 능력에서 “피로”를 느낀다. 피로는 현대인의 만성질환이 되었다.
피로가 쌓이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우리에게는 예전에 없었던 병이 지배한다. 그것은 ‘우울증’이다.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 상처입고 낙오한 사람은 무한한 경쟁,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소진burnout되고 있으며 자기 자신과 끝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더이상 극단적 피로와 탈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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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이라는 자기주도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내가 스스로 해 낼 자유와 능력이 있음은 그 사람됨, 인격의 실현처럼 여기지는 않았는가! 그런데, 실제로 내 주위를 보면 늘 피로한 사람이 많다. 세상의 온갖 자기계발서, 성공을 안내하는 책과는 무관하게 ‘거꾸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들이 현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심지어는 낙오자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도 해도 없어지지 않는 피로, 더 나아가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성격장애 등의 신경성 질환들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피로사회’를 읽으며 무릎을 치며 공감한 것이 이 부분이다. 우리는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겨 자기 착취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과잉생산,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성과사회의 과잉주의에 피해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