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돌아보면 재능있게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놀라운 능력으로 여러가지 일을 효과적으로 해낸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멀티태스커’라 하며 동경한다.
무한경쟁과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과주의의 현대는 자극, 정보, 충동을 넘쳐나게 제공하며 ‘할 수 있는만큼 해 내라’는 멀티태스킹이란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냈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정보, 업무, 시간 관리 기법으로 진보된 인간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은 오히려 퇴화이다. 동물의 세계를 생각해 보자. 먹이를 먹는 동물은 이와 동시에 다른 과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며, 도리어 잡아먹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새끼를 감시하면서 짝짓기 상대도 시야에 두어야 한다. 동물의 멀티태스킹은 어떤 몰입도 할 수 없게 만들며, 빠르게 초점을 이동시키는 산만한 태도를 만들어 낸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이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것, 귀 기울여 듣고 사색하는 능력이 없는 것은 멀티태스킹의 폐해이다. 니체의 다음 말은 어떤가?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찌기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혹시 그대는 지금 바빠서 바쁜가, 아니면 분주함을 숭배하며 바쁘기 위해서 바쁜가, 혹은 그냥 바쁜 척 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