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과 달리 외부의 자극에 시간을 두고 반응을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할 수 있는 능력은 멈출 줄 모르는 기계와는 다른 인간의 특징이다.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리석다. 왜냐하면 ‘머뭇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성과사회의 압력에 놓여있다.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은 성과사회의 압력으로 낙오하거나 실패하는 자에게는 어김없이 우울증을 안겨준다. 극단적 피로와 탈진도 감수하면서 개인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개별화, 파편화된 개인의 소진(burnout)의 시작일 뿐이다.
머뭇거리는 능력은 비효율적이거나 자신없음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다. 멈추어 서서 현재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의문을 제기하고 잘하고 있는 일에 감사하고, 잘못된 일에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산만하고 짜증과 신경질만 늘어가는 현대인이 잃어가는 것이다.
사색적 능력의 상실이야말로 활동적 삶을 절대화한 현대 성과주의 사회의 폐단이다. 종교란 사람을 멈추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성찰하게 하며 ‘넌, 왜 사니?”하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라고 말하면 너무한가! 때론 현대인이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힌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무젤만’과 닮은 것 같다. 극심한 피로와 탈진으로 완전히 무력해진 이들은 우울증 환자처럼 완전히 무감각해진 사람들이다. 다만 현대인들의 영양상태가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고 몸에 지방이 과다한 것만 다를 뿐이다.
오늘밤,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릴 여유가 있는가? 자신의 현재를 살펴보고 무력해진 무감각해진 자신에게 피로의 폭력 대신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