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아주 태초에는 실망이 없었다. 오직 기쁨만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하느님은 실망하게 되고, 그분은 위험한 선택을 하셨다. 우주의 주인께서 피조물에게 자유로운 사랑을 맡기시고 스스로를 속박시키셨다. 비천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왕좌를 버린 왕이 되셨다.
구약시대 때는 거룩한 언약궤를 건드린 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하느님의 이름은 발설할 수도 없었지만 신약에 이르러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지고 치유되었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빠(Abba)’라고 부르게 해 주셨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길은 화해와 사랑의 길로 오래전에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다음에는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의 안을 채우는 생명이자 숨이 되셨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지만 사랑때문에 종이 되기를 서슴치 않으시고 우리처럼 불공평한 세상에서 고통받으셨다. 하느님의 선택의 최종적인 모습은 십자가이다. 세상의 불공평과 부조리를 하느님은 사랑으로 껴안으시고 어둠에서 부활을 이끌어내셨다.
진정한 믿음은 하느님께서 우리 뜻대로 해주시도록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가 느끼는 하느님에 대한 실망감은 그 자체가 이미 그보다 나은 뭔가를 향한 신호요, 통증이요, 허기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이 존재하시는 것처럼 살든지, 아닌 것처럼 살든지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