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흔 중반이다. 새삼 나이란게 훈장이나 권력보다는 얼굴에 주름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이왕 나이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얼마전에 있었던 사건을 말해야겠다.
12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따뜻하던 겨울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에 새로 산 나이키 타이즈를 입고 수성못에서 용지봉 산 정상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말이 달리기지 실제는 빨리 걷는데도 숨은 찼고 몸은 무거웠다. 그럼에도 산행하는 사람들보다는 빨라서 여러 사람을 지나쳤다. 그러다가 오리털 파카를 입고 앞서 걷고 있던 할아버지 두 분을 지나쳤는데 한 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창 때인데, 뭐!”
아마 어떤 할아버지가 타이즈를 입고 뛰어가는 나를 보며 한마디를 했고, 다른 할아버지가 응수한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말이 산을 뛰는 내내 떠나지 않고 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리고 몇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나이는 상대적이다. 내가 어떻게 느끼던, 누가 뭐래도, 그 할아버지들에게 나는 엄청 젊어서 산을 펄펄 나는 한창 때인 청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산을 오르는 동안 몸은 더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마치 젊음의 에너지를 맘껏 써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처럼, 혹은 한창 때인 청년의 에너지를 발견한 것처럼 뛰어 다녔다.
젊게 사는 것은 선택이다. 특히 겨울이 되면 움직이기 싫고, 나이가 마흔을 넘기면 몸이 하나 둘 경고를 보내는 것을 느낄 때면 움츠려 드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나이든 채 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나이에 대해 생각하며, ‘아직 한창 때인데 요령부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주님은 나의 힘이시니 나를 사슴처럼 달리게 하시고 산봉우리를 걷게 하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