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read a book called "Into The Silent Land" written by Martin Laird. It is a guide of the Christian practice of contemplation. It is a simple and yet profound analysis to understand how to get to the silent land through contemplation. I benefit a lot.
My friend in Korea is a Carthusian sister, the order of St. Bruno. They are known for the strictest rules of silence and prayer. Sr. Anthonia sent me a mail and asked how I pray. It was a provoking question that makes me look into my prayer life. I actually pray daily, but I still feel there are more I have to understand and learn. Along the way, I encountered "Into The Silent Land" that was very helpful to evaluate my prayer life. So I translated the epilogue of the book for Sr. Anthonia because she is like the young man in the story and is to take her first vow in January 2011. The translation follows.
후기 (Epilogue)
“나는 누구인가?” 한 수도자의 좌절 이야기
아바(Abba) 포맨이 아바 요셉에게 말했다. “어떻게 수도자가 되는지 말해주십시오.” 아바 요셉이 대답했다. “만약 그대가 지금 이전이나 이후, 어느 상황에서라도 평화를 찾기를 원한다면,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으면서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마시오.”
-사막 교부들의 금언들
1장 (Part One)
한때 자신의 삶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아무 생각이 없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알았다. 나는 수도원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냥 아무 수도원이 아니라 진짜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그는 곧장 진짜 수도원을 찾아 떠났다. 얼마 뒤에 첫 수도원에 이르자 문을 두드렸다. 문지기가 문을 열면서 젊은이에게 물었다. “안녕하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저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은데,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진짜 수도원이어야만 합니다. 여기는 진짜 수도원입니까?”
문지기는 검은 눈으로 젊은이를 두루 살피면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 언제든 환영입니다만 나는 안타깝게도 당신이 진짜 수도원에는 있지 않다고 말해야 겠네요. 당신이 보는 것처럼 우리는 가짜 수도원입니다. 우리는 그냥 그런 척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당신 마음이 진짜 수도원에로 정해져 있다면 계속해서 길을 따라 조금만 더 내려가면 진짜 수도원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리 멀지 않으니 곧 떠나십시오. 그곳에는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젊은이는 기뻤다. 그는 문지기에 작별인사를 하고 진짜 수도원을 찾아 길을 떠났다. 곧 숲으로 들어서는 작은 길에 도달했는데 거기에는 큰 표시가 있었다. “진짜 수도원 100미터.” 흥분된 젊은이는 작은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섰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문지가 곧 나오면서 대답했다. “안녕하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순간 젊은이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왜냐하면 그는 저 위쪽에 있는 가짜 수도원의 그 문지기가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젊은이가 말했다. “저는 진짜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문지기는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당신은 바로 찾아왔다오. 어서 들어오시오. 내가 당신을 수련자들에게 안내해 주겠소. 거기에서 분명히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오.” 그곳에 가는 도중에 문지기는 젊은이에게 길 위쪽에 있는 가짜 수도원에 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말해주었다.
젊은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수련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동료 수련자들 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수도자들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남은 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수련장에게 가서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서원을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수련장이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도원장님과 만나셔야 합니다.”
곧 수도원장과의 만남이 주선되었고, 젊은이는 그의 성소에 대해서 수도원장에게 말하기 위해 앉았다. 수도원장은 어떻게 해서 그가 서원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다. 젊은이는 대답했다. “저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잘 대해주고, 저도 모든 수도자들을 좋아합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참 듣기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형제와 함께 하게 되어 기쁘고 형제가 계속해서 머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형제는 수련기로 돌아가서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형제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젊은이는 크게 상심하면서 떠났다. 왜 수도원장은 그가 서원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일까? 그가 뭔가 잘못 말했기 때문일까? 그가 성소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크게 상심하면서 젊은이는 수련자의 생활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수도원장의 부드러운 거절은 젊은이로 하여금 그의 잘못, 실패와 가정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열성을 가지고 수도원의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다양한 관습을 배우게 되었다. 곧 그는 이 모두에 정통하게 되었다.
일년이 좀더 지나서 젊은이는 수도원장이 물을 수 있는 어떠한 질문이라도 올바로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하면서 수도원장이 그동안 잠시 자신을 기다리게 한 것이 그의 지혜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젊은이는 수련장에게 자신은 서원을 할 준비가 되었으며 수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장은 젊은이가 수도원장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저는 형제가 여전히 서원을 하기를 원하며 우리와 함께 그대의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그대는 서원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저는 이것이 하느님께서 제게 바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것을 이해했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어떤 것임을 압니다. 나아가 저는 수도원의 전통과 카리스마를 배우면서 그것이 저와 깊이 일치되어 있고, 그것이 제 안에서의 부르심을 확실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수도원장은 전심으로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젊은이에게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확실히 깊이 있는 것입니다. 그대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부르심에 대한 그대의 확신은 다만 들음으로서도 제 자신조차 수도자의 삶에 대한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진실로 준비가 될 때까지 그대는 다시 수련기로 돌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수도원장의 집무실을 떠날 때 젊은이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실은 산산히 부서져 버린 것 같았다. 그는 도대체 수도원장이 과연 무슨 말을 듣기를 원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질이 나쁜 수도원의 절반 가량의 수도자들보다 더 깊이 수도원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수련기로 돌아갔다. 그는 이미 필요한 공부를 마쳤기 때문에 포도 가지치기와 당근을 솎아내는 정원일을 거들면서 병실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수년동안 계속해서 했다. 어느날 수도원장이 수련장에게 물었다. “수도서원을 하는 일에 몰두하던 그 젊은이는 어떻게 지냅니까? 그는 더 이상 그 일에 관심이 없나보지요?”
“그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수련장이 말했다.
“그가 불행해 보입니까?” 수도원장이 물었다.
“아니요. 그는 만족해 하는 것 같습니다.” 수련장이 대답했다. “그는 말수가 줄었습니다. 그리고 정원에서의 일을 계속하면서 병실의 나이 든 수도자들을 위로하고 수련기에 있는 새로 들어온 이들을 격려합니다.”
“그를 내게 데려와 주십시오.”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가 오자 수도원장이 질문을 시작했다. “저는 아직도 그대가 수도서원을 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대는 더 이상 예전에 우리 수도원의 전통을 열심히 공부하던 때처럼 서원을 하는 일에 대해서 갈망이 없는 듯 보이는군요. 그 모든 생각을 함께 그만두었나 보지요?”
그는 수도원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의 주름이 그가 어느새 상당한 시간동안 수도원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있었고, 아무 것도 방어할 것이 없는 가난한 자의 평화가 있었다. 그가 수도원장에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것처럼, 신비의 한 가운데를 꿰뚫는 것처럼 그를 깊이 바라보았다. 수도원장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과연 그가 진실로 그가 말한 것을 알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그에게 일어난 모든 변화와 판단을 엄밀히 조사하고 있었다. 수도원장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그 앞에 우뚝 서며 말했다. “그대는 우리의 전통을 모두 익혔습니다. 저를 축복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2장 (Part Two)
두번이나 수도서원을 청했으나 거절당했고, 게다가 수도원장이 제대로 준비가 될 때까지 그를 다시 수련기로 보낸 뒤에 젊은이는 크게 상심했다. 수도원장의 두 번째 거절은 그 안에 있는 불안의 소용돌이를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그는 보기에는 조용히 일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그의 수련복 안에는 혼돈의 발작이 거센 물결처럼 그를 후려치고 있었다. 내면의 혼란이 거세지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번에 한 발씩 내딛으면서 어쨌든 버티는 것 뿐이었다. 혼돈의 발작이 더해질때면 그는 간신히 숨을 들이쉬면서 이것이 불안과 공포의 마지막 엄습이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과연 누가 있을까? 수련장은 삶에 비관적이었고 그의 고해신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수도원에는 백 오십명의 수도자가 있었지만 누가 그를 도울 수 있을까? 그때 알리피우스 신부가 떠올랐다.
알리피우스 신부는 공동체에서 독불장군처럼 받아들여졌지만 한편으론 현명하게 보였다. 그는 구두 수선공으로 정원 아래에 있는 그의 작은 일터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소문에 따르면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다. 젊은이는 혼자 되내었다. “그를 만나봐야 되겠다.” 다음날 기도시간에 그는 성당에 있는 알리피우스 신부의 자리에 쪽지를 남겼다. “혹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오후에 답장이 와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내게로 오시오.” 그래서 젊은이는 저녁 식사 후에 알리피우스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몰래 정원 아래로 내려갔다.
탁자에 기댄 채로 알리피우스 신부는 누군가의 구두를 고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돋보기 넘어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앉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 보시오.”
젊은이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그의 모든 삶, 진짜 수도원을 찾아 나선 일, 수도서원이 거절이 된 것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알리피우스 신부는 구두 한짝을 고치고 있었다. 젊은이가 말을 마치자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한가지만 묻겠소. ‘그대는 누구요?’”
“제가 방금 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젊은이가 말했다.
“아니요. 그대는 그대가 입고 있는 옷들에 대해서 내게 말했다오. 그대의 이름, 어디서 왔고,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말이오. 당신의 문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오.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리다. 당신은 하느님 광채의 한 줄기요.”
“이런 어리석은 말 같으니,” 젊은이는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대는 하느님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빛의 줄기는 태양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태양을 찾지 않는다오. 당신은 하느님 포도밭의 가지라오. 가지는 이미 포도 줄기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포도를 찾지 않고, 파도는 이미 바다로 가득 넘치기에 바다를 찾지 않소. 그대는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신 자신에게 붙어있는 꼬리표를 믿고 있다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성인이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벌레이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수도자이다, 나는 간호사이다. 이 모든 것은 딱지들, 곧 걸치고 있는 옷과 다를 바 없다오. 이 모든 것들은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대 자신은 아니오. 하지만 그대가 이 꼬리표를 믿기 시작하면 당신은 거짓을 믿게 되고 그것은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 것이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 삶에서 주로 하는 일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경력이라고 말하지만 수도자들은 이것을 성소라고 부른다오.”
“시편저자가 말하는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가 무슨 뜻인지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기 전에 그대는 먼저 멈추고 그대가 누구인지 배워야만 한다오. 그 나머지는 다 따라오기 마련이지.”
다시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당신의 기도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저는 공동기도에 빠진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젊은이가 대답했다.
“나는 그대가 기도를 하는가를 묻지 않았소. 나는 기도에 대해서 물었소.”
“침묵기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말해보시오.”
“저는 침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대는 이미 침묵하고 있다오. 나는 어떻게 많은 소음과 혼란이 소용돌이치는지 안다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진실이지. 그러나 그대, 그대는 침묵이라오. 그대는 혼돈을 이해하고 있는 침묵이라오. 그대는 혼란을 바라보는 침묵이라오. 다시 내가 말하건데,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오.”
“그러면 이 모든 혼란은 무엇입니까?” 젊은이가 물었다.
“그것은 날씨와 같은 것일 뿐이오. 말해 보시오. 그대가 침묵 가운데 앉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저는 관상에 다다를려고 노력하지만 곧잘 제 생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그러나 침묵, 침묵과 관상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깊이있는 것이라오. 그리고 그대 머릿 속에서 계속되는 것들이 머무르는 광활한 어떤 것과 연관이 있다오. 실재의 공허함으로 가득찬 이러한 광활함이 보이는 모든 것들의 중심으로 인식될 때, 곧 심지어 내면의 혼란도 포함할 때, 이것으로 관상, 침묵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오.”
“저는 그것의 일부를 힐끗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제 생각 속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젊은이가 고백했다.
“그런가요? 나는 그대가 하느님 광채의 한 줄기, 포도밭의 가지라고 생각했었다오. 그런데 그대는 지금 그대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소. 곧 그대 스스로를 생각 속에서 잃어버린다고 말이지오. 그러나 ‘내가 생각 속에서 길을 잃다’라고 하는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은 아닌가요, 혹은 단지 잘못된 믿음에 따른 꼬리표는 아닌가요? 우리는 보통 우리가 생각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보시오. 과연 그대가 그대 생각 속에서 길을 잃었단 말이요?”
“지금은 아닙니다. 하지만 돌아가서 침묵 가운데 앉아 있으려고 하면 이런 내면의 번잡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는 제 마음이 조용해야 한다는 것과 아무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그의 가르침을 이어갔다. “‘내 마음이 조용해야 한다’거나 ‘아무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이전의 생각들보다 더 소란스럽다오. 실제로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오히려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그 믿음은 더 깊은 현실로부터 당신을 멀어지게 만들지. 침묵은 자연스럽게 현존합니다. 침묵은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다오. 당신이 ‘나는 내 생각 속에서 길을 잃었다’ ‘내 마음은 침묵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때, 잠시 멈추고 물어보시오: ‘누가 길을 잃었단 말인가? 누가 조용하지 않단 말인가?’ 지금 당장 이것을 실행해 보시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젊은이는 경직되어 보였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물었다. “그대가 생각을 직접 들여다 볼 때 그대는 잃어버린 누군가를 봅니까?”
“아니요. 아무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번잡한 소리도 없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모든 상념들이 돌아옵니다.”
“맞습니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신이 나서 말했다. “생각은 늘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대가 생각이나 감정을 똑바로 보면서 누가 소란인지, 누가 고통받는지 물으면, 당신은 아무도, 고통받는 어떤 이도 찾지 못할 것이오. 물론 내면의 소란은 있을 것이고 고통도 마찬가지오. 생각은 오고 갑니다. 고통, 번민, 두려움을 보지 마시오. 이런 것들은 인식의 대상들일 뿐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인식 자체를 들여다 보는 것이오. 이것들은 당신의 주의를 십 수년간 지배해 왔소. 이제 당신의 관심이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 안에서 쉬게 하시오. 그렇소. 나는 이제 당신의 얼굴에서 마음이 침잠해가는 것을 볼 수 있소.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소?”
“아무것도,” 젊은이가 말했다. “단지 거대한 없음 뿐입니다.”
“과연 당신 머릿 속에 있는 이 모든 소란과 혼돈의 실체가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젊은이가 대답했다. “그것은 단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맞소,”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이제 얼마나 단순한지 볼 수 있나요? 이것은 특별하거나 희귀한 것이 아니오. 이것은 당신이 아홉 시간동안 계속해서 기도를 했다거나 지난 삼 주동안 단식을 했기 때문이 아니오. 이런 수도원의 방법은 이미 다 이루었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이오. 당신이 혼돈과 내면의 소음과 비판의 회오리에 갇히는 것을 볼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시오. ‘나는 누구인가?’ ‘누가 혼돈을 경험하고 있는가? 누가 내면의 소음을 내는가? 누가 비판을 하는가?’하고 물어보시오. 만약 당신이 생각에 갇혀 있는가를 확인해 본다면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그대가 그대의 주의를 인식의 대상에서 인식 그 자체로 옮길 때, 그곳에는 결코 한번도 상처받거나 화내거나 놀라거나 미완성인적이 없었던 어떤 조용하고 거대한 열려있음이 있을 것이오. 그것이 바로 당신이오.”
많은 밤 젊은이는 알리피우스 신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정원 아래로 내려갔다. 그것은 모두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젊은이는 정체성의 역설과 지혜 안에서 자랐고, 커다란 고요가 그 안에 생겼다. 그들의 마지막 만남에서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그대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은 다 섭렵했다오. 이제 그대에게 다른 질문 하나를 하고 싶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요?’” 젊은이는 침묵 안에서 내면을 응시하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젊은이를 바라보았을 때, 신부의 얼굴이 밝아졌다. 왜냐하면 그는 젊은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로 앉아 구두를 다시 수선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젊은이에게 말했다. “잘했소. 이제 떠나시오. 수도원장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오.”
후기 (Epilogue)
“나는 누구인가?” 한 수도자의 좌절 이야기
아바(Abba) 포맨이 아바 요셉에게 말했다. “어떻게 수도자가 되는지 말해주십시오.” 아바 요셉이 대답했다. “만약 그대가 지금 이전이나 이후, 어느 상황에서라도 평화를 찾기를 원한다면,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으면서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마시오.”
-사막 교부들의 금언들
1장 (Part One)
한때 자신의 삶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아무 생각이 없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알았다. 나는 수도원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냥 아무 수도원이 아니라 진짜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그는 곧장 진짜 수도원을 찾아 떠났다. 얼마 뒤에 첫 수도원에 이르자 문을 두드렸다. 문지기가 문을 열면서 젊은이에게 물었다. “안녕하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저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은데,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진짜 수도원이어야만 합니다. 여기는 진짜 수도원입니까?”
문지기는 검은 눈으로 젊은이를 두루 살피면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 언제든 환영입니다만 나는 안타깝게도 당신이 진짜 수도원에는 있지 않다고 말해야 겠네요. 당신이 보는 것처럼 우리는 가짜 수도원입니다. 우리는 그냥 그런 척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당신 마음이 진짜 수도원에로 정해져 있다면 계속해서 길을 따라 조금만 더 내려가면 진짜 수도원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리 멀지 않으니 곧 떠나십시오. 그곳에는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젊은이는 기뻤다. 그는 문지기에 작별인사를 하고 진짜 수도원을 찾아 길을 떠났다. 곧 숲으로 들어서는 작은 길에 도달했는데 거기에는 큰 표시가 있었다. “진짜 수도원 100미터.” 흥분된 젊은이는 작은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섰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문지가 곧 나오면서 대답했다. “안녕하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순간 젊은이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왜냐하면 그는 저 위쪽에 있는 가짜 수도원의 그 문지기가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젊은이가 말했다. “저는 진짜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문지기는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당신은 바로 찾아왔다오. 어서 들어오시오. 내가 당신을 수련자들에게 안내해 주겠소. 거기에서 분명히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오.” 그곳에 가는 도중에 문지기는 젊은이에게 길 위쪽에 있는 가짜 수도원에 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말해주었다.
젊은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수련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동료 수련자들 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수도자들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남은 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수련장에게 가서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서원을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수련장이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도원장님과 만나셔야 합니다.”
곧 수도원장과의 만남이 주선되었고, 젊은이는 그의 성소에 대해서 수도원장에게 말하기 위해 앉았다. 수도원장은 어떻게 해서 그가 서원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다. 젊은이는 대답했다. “저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잘 대해주고, 저도 모든 수도자들을 좋아합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참 듣기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형제와 함께 하게 되어 기쁘고 형제가 계속해서 머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형제는 수련기로 돌아가서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형제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젊은이는 크게 상심하면서 떠났다. 왜 수도원장은 그가 서원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일까? 그가 뭔가 잘못 말했기 때문일까? 그가 성소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크게 상심하면서 젊은이는 수련자의 생활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수도원장의 부드러운 거절은 젊은이로 하여금 그의 잘못, 실패와 가정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열성을 가지고 수도원의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다양한 관습을 배우게 되었다. 곧 그는 이 모두에 정통하게 되었다.
일년이 좀더 지나서 젊은이는 수도원장이 물을 수 있는 어떠한 질문이라도 올바로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하면서 수도원장이 그동안 잠시 자신을 기다리게 한 것이 그의 지혜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젊은이는 수련장에게 자신은 서원을 할 준비가 되었으며 수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장은 젊은이가 수도원장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저는 형제가 여전히 서원을 하기를 원하며 우리와 함께 그대의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그대는 서원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저는 이것이 하느님께서 제게 바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것을 이해했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어떤 것임을 압니다. 나아가 저는 수도원의 전통과 카리스마를 배우면서 그것이 저와 깊이 일치되어 있고, 그것이 제 안에서의 부르심을 확실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수도원장은 전심으로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젊은이에게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확실히 깊이 있는 것입니다. 그대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부르심에 대한 그대의 확신은 다만 들음으로서도 제 자신조차 수도자의 삶에 대한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진실로 준비가 될 때까지 그대는 다시 수련기로 돌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수도원장의 집무실을 떠날 때 젊은이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실은 산산히 부서져 버린 것 같았다. 그는 도대체 수도원장이 과연 무슨 말을 듣기를 원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질이 나쁜 수도원의 절반 가량의 수도자들보다 더 깊이 수도원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수련기로 돌아갔다. 그는 이미 필요한 공부를 마쳤기 때문에 포도 가지치기와 당근을 솎아내는 정원일을 거들면서 병실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수년동안 계속해서 했다. 어느날 수도원장이 수련장에게 물었다. “수도서원을 하는 일에 몰두하던 그 젊은이는 어떻게 지냅니까? 그는 더 이상 그 일에 관심이 없나보지요?”
“그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수련장이 말했다.
“그가 불행해 보입니까?” 수도원장이 물었다.
“아니요. 그는 만족해 하는 것 같습니다.” 수련장이 대답했다. “그는 말수가 줄었습니다. 그리고 정원에서의 일을 계속하면서 병실의 나이 든 수도자들을 위로하고 수련기에 있는 새로 들어온 이들을 격려합니다.”
“그를 내게 데려와 주십시오.”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가 오자 수도원장이 질문을 시작했다. “저는 아직도 그대가 수도서원을 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대는 더 이상 예전에 우리 수도원의 전통을 열심히 공부하던 때처럼 서원을 하는 일에 대해서 갈망이 없는 듯 보이는군요. 그 모든 생각을 함께 그만두었나 보지요?”
그는 수도원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의 주름이 그가 어느새 상당한 시간동안 수도원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있었고, 아무 것도 방어할 것이 없는 가난한 자의 평화가 있었다. 그가 수도원장에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것처럼, 신비의 한 가운데를 꿰뚫는 것처럼 그를 깊이 바라보았다. 수도원장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과연 그가 진실로 그가 말한 것을 알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그에게 일어난 모든 변화와 판단을 엄밀히 조사하고 있었다. 수도원장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그 앞에 우뚝 서며 말했다. “그대는 우리의 전통을 모두 익혔습니다. 저를 축복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2장 (Part Two)
두번이나 수도서원을 청했으나 거절당했고, 게다가 수도원장이 제대로 준비가 될 때까지 그를 다시 수련기로 보낸 뒤에 젊은이는 크게 상심했다. 수도원장의 두 번째 거절은 그 안에 있는 불안의 소용돌이를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그는 보기에는 조용히 일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그의 수련복 안에는 혼돈의 발작이 거센 물결처럼 그를 후려치고 있었다. 내면의 혼란이 거세지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번에 한 발씩 내딛으면서 어쨌든 버티는 것 뿐이었다. 혼돈의 발작이 더해질때면 그는 간신히 숨을 들이쉬면서 이것이 불안과 공포의 마지막 엄습이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과연 누가 있을까? 수련장은 삶에 비관적이었고 그의 고해신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수도원에는 백 오십명의 수도자가 있었지만 누가 그를 도울 수 있을까? 그때 알리피우스 신부가 떠올랐다.
알리피우스 신부는 공동체에서 독불장군처럼 받아들여졌지만 한편으론 현명하게 보였다. 그는 구두 수선공으로 정원 아래에 있는 그의 작은 일터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소문에 따르면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다. 젊은이는 혼자 되내었다. “그를 만나봐야 되겠다.” 다음날 기도시간에 그는 성당에 있는 알리피우스 신부의 자리에 쪽지를 남겼다. “혹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오후에 답장이 와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내게로 오시오.” 그래서 젊은이는 저녁 식사 후에 알리피우스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몰래 정원 아래로 내려갔다.
탁자에 기댄 채로 알리피우스 신부는 누군가의 구두를 고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돋보기 넘어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앉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 보시오.”
젊은이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그의 모든 삶, 진짜 수도원을 찾아 나선 일, 수도서원이 거절이 된 것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알리피우스 신부는 구두 한짝을 고치고 있었다. 젊은이가 말을 마치자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한가지만 묻겠소. ‘그대는 누구요?’”
“제가 방금 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젊은이가 말했다.
“아니요. 그대는 그대가 입고 있는 옷들에 대해서 내게 말했다오. 그대의 이름, 어디서 왔고,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말이오. 당신의 문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오.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리다. 당신은 하느님 광채의 한 줄기요.”
“이런 어리석은 말 같으니,” 젊은이는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대는 하느님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빛의 줄기는 태양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태양을 찾지 않는다오. 당신은 하느님 포도밭의 가지라오. 가지는 이미 포도 줄기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포도를 찾지 않고, 파도는 이미 바다로 가득 넘치기에 바다를 찾지 않소. 그대는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신 자신에게 붙어있는 꼬리표를 믿고 있다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성인이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벌레이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수도자이다, 나는 간호사이다. 이 모든 것은 딱지들, 곧 걸치고 있는 옷과 다를 바 없다오. 이 모든 것들은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대 자신은 아니오. 하지만 그대가 이 꼬리표를 믿기 시작하면 당신은 거짓을 믿게 되고 그것은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 것이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 삶에서 주로 하는 일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경력이라고 말하지만 수도자들은 이것을 성소라고 부른다오.”
“시편저자가 말하는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가 무슨 뜻인지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기 전에 그대는 먼저 멈추고 그대가 누구인지 배워야만 한다오. 그 나머지는 다 따라오기 마련이지.”
다시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당신의 기도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저는 공동기도에 빠진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젊은이가 대답했다.
“나는 그대가 기도를 하는가를 묻지 않았소. 나는 기도에 대해서 물었소.”
“침묵기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말해보시오.”
“저는 침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대는 이미 침묵하고 있다오. 나는 어떻게 많은 소음과 혼란이 소용돌이치는지 안다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진실이지. 그러나 그대, 그대는 침묵이라오. 그대는 혼돈을 이해하고 있는 침묵이라오. 그대는 혼란을 바라보는 침묵이라오. 다시 내가 말하건데,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오.”
“그러면 이 모든 혼란은 무엇입니까?” 젊은이가 물었다.
“그것은 날씨와 같은 것일 뿐이오. 말해 보시오. 그대가 침묵 가운데 앉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저는 관상에 다다를려고 노력하지만 곧잘 제 생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그러나 침묵, 침묵과 관상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깊이있는 것이라오. 그리고 그대 머릿 속에서 계속되는 것들이 머무르는 광활한 어떤 것과 연관이 있다오. 실재의 공허함으로 가득찬 이러한 광활함이 보이는 모든 것들의 중심으로 인식될 때, 곧 심지어 내면의 혼란도 포함할 때, 이것으로 관상, 침묵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오.”
“저는 그것의 일부를 힐끗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제 생각 속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젊은이가 고백했다.
“그런가요? 나는 그대가 하느님 광채의 한 줄기, 포도밭의 가지라고 생각했었다오. 그런데 그대는 지금 그대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소. 곧 그대 스스로를 생각 속에서 잃어버린다고 말이지오. 그러나 ‘내가 생각 속에서 길을 잃다’라고 하는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은 아닌가요, 혹은 단지 잘못된 믿음에 따른 꼬리표는 아닌가요? 우리는 보통 우리가 생각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보시오. 과연 그대가 그대 생각 속에서 길을 잃었단 말이요?”
“지금은 아닙니다. 하지만 돌아가서 침묵 가운데 앉아 있으려고 하면 이런 내면의 번잡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는 제 마음이 조용해야 한다는 것과 아무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그의 가르침을 이어갔다. “‘내 마음이 조용해야 한다’거나 ‘아무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이전의 생각들보다 더 소란스럽다오. 실제로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오히려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그 믿음은 더 깊은 현실로부터 당신을 멀어지게 만들지. 침묵은 자연스럽게 현존합니다. 침묵은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다오. 당신이 ‘나는 내 생각 속에서 길을 잃었다’ ‘내 마음은 침묵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때, 잠시 멈추고 물어보시오: ‘누가 길을 잃었단 말인가? 누가 조용하지 않단 말인가?’ 지금 당장 이것을 실행해 보시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젊은이는 경직되어 보였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물었다. “그대가 생각을 직접 들여다 볼 때 그대는 잃어버린 누군가를 봅니까?”
“아니요. 아무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번잡한 소리도 없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모든 상념들이 돌아옵니다.”
“맞습니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신이 나서 말했다. “생각은 늘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대가 생각이나 감정을 똑바로 보면서 누가 소란인지, 누가 고통받는지 물으면, 당신은 아무도, 고통받는 어떤 이도 찾지 못할 것이오. 물론 내면의 소란은 있을 것이고 고통도 마찬가지오. 생각은 오고 갑니다. 고통, 번민, 두려움을 보지 마시오. 이런 것들은 인식의 대상들일 뿐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인식 자체를 들여다 보는 것이오. 이것들은 당신의 주의를 십 수년간 지배해 왔소. 이제 당신의 관심이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 안에서 쉬게 하시오. 그렇소. 나는 이제 당신의 얼굴에서 마음이 침잠해가는 것을 볼 수 있소.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소?”
“아무것도,” 젊은이가 말했다. “단지 거대한 없음 뿐입니다.”
“과연 당신 머릿 속에 있는 이 모든 소란과 혼돈의 실체가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젊은이가 대답했다. “그것은 단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맞소,”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이제 얼마나 단순한지 볼 수 있나요? 이것은 특별하거나 희귀한 것이 아니오. 이것은 당신이 아홉 시간동안 계속해서 기도를 했다거나 지난 삼 주동안 단식을 했기 때문이 아니오. 이런 수도원의 방법은 이미 다 이루었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이오. 당신이 혼돈과 내면의 소음과 비판의 회오리에 갇히는 것을 볼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시오. ‘나는 누구인가?’ ‘누가 혼돈을 경험하고 있는가? 누가 내면의 소음을 내는가? 누가 비판을 하는가?’하고 물어보시오. 만약 당신이 생각에 갇혀 있는가를 확인해 본다면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그대가 그대의 주의를 인식의 대상에서 인식 그 자체로 옮길 때, 그곳에는 결코 한번도 상처받거나 화내거나 놀라거나 미완성인적이 없었던 어떤 조용하고 거대한 열려있음이 있을 것이오. 그것이 바로 당신이오.”
많은 밤 젊은이는 알리피우스 신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정원 아래로 내려갔다. 그것은 모두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젊은이는 정체성의 역설과 지혜 안에서 자랐고, 커다란 고요가 그 안에 생겼다. 그들의 마지막 만남에서 알리피우스 신부가 말했다, “그대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은 다 섭렵했다오. 이제 그대에게 다른 질문 하나를 하고 싶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요?’” 젊은이는 침묵 안에서 내면을 응시하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알리피우스 신부가 젊은이를 바라보았을 때, 신부의 얼굴이 밝아졌다. 왜냐하면 그는 젊은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로 앉아 구두를 다시 수선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젊은이에게 말했다. “잘했소. 이제 떠나시오. 수도원장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