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미워하지 말자’하고 다짐을 하지만 자연스레 사람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 미움입니다. 제가 미국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같은 반에 아홉 명의 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살아생전 처음 만난 신학생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두 명은 참 친절하고 똑똑해서 마음에 들었고, 여섯은 그만저만하게 어울릴 수 있었는데 한 친구는 무얼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도 그를 보고 있으면 미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미운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더 놀라운 것은 제가 미워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먼저 사람을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 곧 미움받을만한 사람과 그를 미워할 여러 가지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도 그를 싫어한다. 열 명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단 한 사람만 보고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움받는데 일등은 예수님이십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비난한다고 생각했고,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는 옷을 찢으며 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진짜 미워한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먹고 자고 늘 함께 있던 사람이 그를 가장 미워했고, 마침내 그를 없애 버리려고 적대자들에게 그를 팔아 넘겼습니다. 그는 미움받는 사람,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하고 고통을 받아 그의 모습이 인간 같지 않게 망가질 때까지 미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겨졌고, 그 미움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죽기까지 미움 받았던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요한 15,18-19).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우리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감히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미움받고 박해받고 죽임까지 당할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다면 세상은 우리를 사랑할지언정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만일 여기 있는 여러분이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 있는 세 명의 아기, 한열음, 김지안, 김보겸에게 세례를 베풀어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초대할려고 합니다. 이 아기들은 요나(9/21), 글라라(8/11), 보나(보나벤투라, 7/15)로 가톨릭 신자가 되어 새로 태어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이는 말합니다. 가톨릭 신자로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그렇게 미움을 받는다면 나중에 이들이 다 커서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고, 좀 더 근본적으로 자신의 신앙은 자신이 선택하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 결정해서 어느 나라에서 이런 부모 밑에서 저런 조건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이 선물이듯 신앙도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생명과 신앙을 우리도 자녀들에게 거저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깨닫듯이 신앙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기쁨이며, 이 세상 너머를 꿈꾸게 하는 희망입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의 선물을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여기 있는 세 명의 아기에게 전해 줍니다. 이들이 비록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이들에게 신앙을 전해주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미움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받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들이 가톨릭 신자로 고난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겪더라도 신앙 안에서 의미를 찾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우리를 닮은 가톨릭 신자가 되기를 바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이 아이들의 모범이자 기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선물인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시련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신앙의 여정을 계속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이 아이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은 오늘 이 아이들이 가톨릭 신자로 새로 태어나 자긍심을 가지고 살며 신앙 안에서 희망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아이들이 가톨릭 신자로 잘 자라도록 먼저 신앙의 모범이 되겠습니까?
노인의 평화와 아이의 기쁨, 이것이 교회의 공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