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자신의 일과 자리, 역할에 대해 익숙해지면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익숙해진 일을 반복하다보면 그 일에서 느끼는 신선함과 활력은 사라지고 권태나 지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수도생활, 사제생활은 권태와 습관에 물들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하는 지속적인 성찰과 수련이 전부입니다.
권태는 영적이며 정신적인 병입니다. 권태나 지겨움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 동화되어 좀처럼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치 나비가 되기를 포기한 에벌레처럼 습관과 편견에 안주합니다. 권태에 빠진 이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경험해보지 않았고 예측할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원문으로 다시 번역하면, “애써 해변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깊은 곳으로 진입해라.”입니다. 시몬에게 해변은 다른 어부들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 습관처럼 일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곳’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깊은 곳은 바닥이 없는 심연, 혹은 미지의 세계이며 동시에 두려움의 근원입니다.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자신이며, 내가 도망치고 싶은 사실이거나 사건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미지의 세계는 내 안에 계속해서 공포와 두려움, 나약함, 화, 분노, 미움, 질투, 그리고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의 모순을 대면하는 그곳에서 흉측했던 과거라는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만나도록 초대하십니다.
“중은 절이 익숙해지면 떠난다.”라는 말처럼, 수도생활, 사제생활을 하는 이는 익숙해짐을 경계하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익숙해져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혹은 자신만이 그 자리, 그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면 주님께서는 ‘깊은 곳으로 나아가라’ 하고 명령하십니다. ‘지금도 괜찮은데 왜 그래야 하죠?’ ‘두렵습니다.’ 하고 변명을 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댓구없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것이 변화된 삶, 은총의 여정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는 9월 4일 주일에 성인품에 오르는 마더 데레사 역시 익숙해진 수녀원 선생님에서 깊은 곳, 곧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변방에서 주님과 만난 콜카타의 성녀 마더데레사는 그물이 찢어질만큼 많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과 사람을 낚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권태롭고 지겨운 일상, 무의미해 보이는 나의 일, 무기력한 나 자신을 마주한다면 그때가 바로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