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드가 성주 소성리에 기습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엄청난 숫자의 경찰로 벽을 만들고 미국에서 몰래 들여온 미사일을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님들이 살고 있는 평화계곡 옆에 가져다 설치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이런 짓을 한 대한민국 정부와 경찰은 도둑이며 강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요한 10,1).
우리가 드나드는 문은 안과 밖을 구별합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문을 통해서 들어와야 환영받습니다. 그리고 문이 닫겨 있으면 밖에서 강제로 열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도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기 위해 애쓰지만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있으면 밖에서 기다리십니다. 하느님도 닫힌 마음은 어쩔 수 없는데 폭력적인 정권과 그들의 이기적인 욕심은 문을 강제로 열고 미사일을 들고 들어옵니다. 오직 인간만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므로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고해소에 들어온 고통받는 영혼이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를 받고 고해소를 나갈 때는 위로와 희망이라는 문을 열고 나갑니다. 저는 고해소에서 종종 시편 23편을 다시 한번 읽도록 보속을 줍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을 때 그분을 통해서 위로 받습니다. 그분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도둑이며 강도인 늑대들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올 뿐이지만 그분은 오직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시므로 그분의 상처로 우리의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문이 되시어 ‘이리로 들어오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문은 늘 열려있지만 그리로 들어가는 것은 오직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지금 있는 곳이 너무 좋아서, 혹은 문이라는 시련을 겪기 싫어서, 혹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몰라 두려워서 우리는 문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갇혀 있게 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이라는 문을 통과하는 것이 때론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겪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기고 하고, 자신 스스로도 이 길에서 의문과 두려움이 들기도 하겠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견디어 내는 은총을 주십니다.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문이 되어야 한다고, 위로와 희망의 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한때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가장 높은 권력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사람들이 그 위치를 이용하여 자신을 위한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래서는 안되겠습니다. 도둑과 강도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백성을 억압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으로서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것이 이 시대가 필요한 리더쉽, 곧 Servant Leadership이며 우리는 모두 사람들을 모시고 봉사하는 가운데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문이 되라는 불리움 받았습니다. 그 문은 턱이 낮아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때론 자신의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지고, 내 안에서 생기를 잃고, 공동체와 교회, 형제 자매들의 모습에서 실망할 때 시편 23편을 노래해 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과연 그분의 상처로 우리의 병은 나았습니다. 다 함께 착한 목자인 주님을 생각하며 가톨릭 성가 50번을 노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