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서 살면서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어느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맞아들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함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일한 첫 본당에는 정말(?)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에 보통 두 서너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한번은 주임신부님께서 일주일간 휴가를 가셨는데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른들이 돌아가셔서 하루에 한 분씩 여섯 분의 장례를 치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항상 어렵습니다.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 가운데 하나는 저의 영성지도 신부님의 죽음입니다. 그분은 예수회 사제로 일흔에 은퇴하시고 제가 일하던 본당에 와서 같이 살았는데 성격은 호탕하고 목소리는 천둥같고 열정이 넘치신 분이셨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두배는 더 많았지만 저는 그분과 친구처럼 지냈고 영성지도도 받았습니다. 제가 2년 임기를 마치고 본당을 떠날 때 쯤 신부님께서는 자주 기침을 하시긴 했지만 여전히 활기찬 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로부터 육개월 뒤, 저는 신부님께서 폐암 선고를 받으셨으며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장례미사를 집전했었지만 선배이자 친구인 신부님을 찾아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과의 만남을 미루다가 더 늦으면 영원히 후회할 것 같아 용기를 내었습니다. 2009년 12월 5일, 저는 신부님께 전화를 드리고 찾아갔습니다. 신부님은 무척 수척해져 있었고, 기침 때문에 말도 길게 하지 못하셨습니다. “잘 지내시죠?” 일부러 생기있게 물었는데, “이제는 계단을 오르는데도 몇 번을 쉬어야 하고,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미사를 드릴 때 손을 들기도 힘든다는 사실이란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물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으세요?” 신부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죽음, 눈을 감았다가 뜨지 않으면 죽는 거겠지. 난 두렵지 않아.” “제가 신부님을 어떻게 기억하기를 바라세요?” “충실한 종이자 겸손한 사제, 그리고 예수회 회원으로.”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다시 큰 숨을 쉬고 여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이 마지막으로 저를 축복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신부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 머리에 두 손을 얹고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신부님의 작고 갈라진 목소리 가운데 ‘아버지, 성령, 아들’이라는 말이 겨우 들리는데 신부님의 지친 손은 점점 더 무겁게 제 머리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두 손 아래에서 저는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날로부터 열흘 뒤, 신부님께서는 하느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신부님 역시 두려워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칠십 평생을 기도하며 그 날을 준비하셨기에 기꺼이 죽음을 맞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죽음을 두려워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히브 5,7).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하느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미안함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탄원을 바치지 않습니까!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기다리며 피하지 않고 맞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기꺼이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고 죽음을 껴안으셨습니다. 그래서 완전하게 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밀알 하나임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죽어야 산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고난을 겪어야만 영광에 들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인류가 기억하는 가장 최초의 순간부터 예수님에게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죽음을 그렇게 고결하게 만든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은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들어 올려지는 것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죽음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바라보아야 할 것,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이끌어 들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소멸이 아니라 영광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죽음으로써만 가능한 온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죽음에로 매일 한발짝씩 다가서고 있습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하실렵니까? 만일 제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날 신부님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용기를 내어 ‘신부님, 죽는게 두렵지 않으세요?’라고 묻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신부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신부님의 마지막 축복을 받지 않고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더라면 저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로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저는 신부님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곧 상상할 수도 없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나의 밀알로서 신부님께서는 죽으면서 제 안에 많은 열매를 맺어주셨습니다.
사제로서 살면서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어느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맞아들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함께 기도하는 일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가장 보람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운데에서 함께 살면서 추억을 나누던 이를 하느님께 돌려보내며 우리는 사람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함께 올립니다. 이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떠나 보내는 이를 위한 우리의 마지막 도리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조금 덜 두려워하고 용기를 내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남아있는 이들의 기도입니다.
오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보고 용기를 내어 죽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기억합니다. “죽기 전에 죽어라. 그러면 네가 죽을 때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Die before you die so when you die, you won’t die.” 밀알 하나로 기꺼이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