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아픈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리나 무릎이 아픈 사람, 어깨통증을 느끼는 사람, 속이 불편한 사람, 눈이 침침한 사람, 변비나 전립선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 신경쇠약이나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 거기다가 성인 세 명중에 한명은 암에 걸린다니 여기 계신 분 대부분이 좋든 싫든 병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솔직히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병을 경험하고 영향을 받고 살아가므로 병은 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조건과 관련해서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위험은 ‘자기연민’입니다. 제가 아는 신부님 한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이가 예순을 넘기니 몸 여기저기서 고장이 나네요. 불편한 것은 참으면 되고, 아픈 것은 치료하면 되는데 걸을 때마다 무릎이 아픈 것은 참기가 참 어렵습니다. 잠 잘때도 무릎이 아파서 잠을 자기 힘듭니다. 이렇게 아프다보니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항상 아픈데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도 잘 안 잡히고, 남에게 신경질도 자주 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고, 아픈 나를 위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와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친은 다리를 저는데다가 얼굴까지 얽은 분입니다. 나름 다리가 아픈 것을 이해한다고 생각한 저는 모친께, “어머니, 불편한 다리로 바깥에 나가는 것은 힘들지 않나요?” 어머니는 대답했습니다. “불편한 것은 참으면 되는데 아이들이 내 얼굴을 보고 무서워 할 때가 가슴이 제일 아프단다. 그래서 밖을 잘 안 나가게 되었지. 그런데, 하루는 기도 하는 도중에 눈물이 계속 났단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짊어지신 고통과 죽음을 생각하니 내가 가진 불편이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나 자신만 생각했던 잘못을 예수님께 용서 청했고, 그 후로는 아무렇지 않게 밖을 나다니게 되었단다.”
아프게 되면 사람은 쉽게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부리고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런 자기연민에 갇힌 사람은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특별히 나이가 들면, 이런 이유로 고약한 성격을 지니게 되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 곧 곁에 있어도 편안한 두 종류의 사람이 뚜렷해집니다.
옛말에 “아픈 것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약으로 삼아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프게 되는데 이럴 때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인생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평생 건강할 것 같이 살다가도 아프게 되면 멈추고 자신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것마저 무시하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죽게 될 것입니다. 결국 고통이 생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프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것은 환상입니다. 아프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은 로봇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시들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은 화려한 플라스틱 조화이지 살아있는 꽃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아프거나 병들지 않는다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자만할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것, 무의미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겠지만 인생의 후반기에서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을 주는 병은 피해야 할 것, 무의미한 것만은 아닙니다. 병듬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비로소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여기 있는 누가 의사가 필요없는 건강한 이들입니까? 과연 누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자처하며 나서겠습니까? 여기 있는 여러분은 하느님이 절실히 필요한 병든 이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죽을 죄를 짓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불쌍한 죄인들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병든 이이며 죄인입니다. 때문에 의사가 필요합니다. 중병에 걸렸고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기에 하느님이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어둠이 없으면 빛이 없듯이 죄가 없으면 용서가 없고, 고통이 없으면 생명이 없듯이 하느님 없이는 인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병든 자, 죄인으로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병들고 죄 지은 것이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연민과 자만의 위험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 이것뿐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과거 없는 성인이 없고, 미래 없는 죄인이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의사이신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나오는 사람에게는 병과 죄가 생명으로 이끄는 구원의 길이 되겠지만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자위하는 사람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병과 죄가 죽음을 가져올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눈 것처럼, 우리도 오늘 성찬의 식탁에 함께 나왔습니다. 이것을 식구(食口)라고 하죠. 같은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 그 안에 인정과 용서, 사랑과 희망이 있습니다. 병들고 죄 지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새로운 기회를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나오십시오. 자신의 병듬과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서 위안과 용서를 경험하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