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입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 재산에 대한 집착, 복잡해진 관계에 대한 집착, 건강에 대한 집착, 명예에 대한 집착, 이런 것들 때문에 괴로움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 때문입니다. 더 인정받고 더 가지고 더 누리고 싶은 욕망, 하지만 욕망을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평화란 없습니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예전에 저는 신학교 입학을 반대하는 부모님 때문에 출가가 아니라 가출을 먼저 했었는데 가출이든 출가든 집착의 집, 욕망의 집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옛 스님은 말합니다. “욕망에는 근심이 따르는데, 출가는 편안하고 조용합니다.”
불교에는 ‘동안거, 하안거’라 하여 스님들이 겨울과 여름 3개월동안 선방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만 몰두하며 수행하고 정진합니다. 이슬람에는 모든 이슬람교인이 ‘라마단’이라 하여 30일동안 해가 뜨는 일출부터 해가 지는 일몰까지 모든 음식,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5번 기도하고 자카트라는 자선을 실천합니다. 이와 같은 이웃종교처럼 그리스도교에는 사순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며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 자선을 실천합니다.
어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내려놓으면 조금 평화로워질 것이다. 많이 내려놓으면 많이 평화로워질 것이다. 완전히 내려놓으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세상과의 싸움은 끝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40일동안 우리가 가진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 딸답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유명했던 영화 대사가 생각납니다. “너거 아버지 뭐 하시노?”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주님의 기도 때마다 우리는 부릅니다. 우리 아버지의 이름은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은 ‘하’씨겠지요.
오늘 바오로 사도 역시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코린 3,16-17).
그런데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답게 거룩합니까? 여러분 안에 하느님의 영이 머무르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걱정됩니다.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엉망인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성전이라니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순절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고 회복해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첫번째 노력이 바로 단식입니다. 불가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으로 우리의 입, 우리의 마음, 그리고 우리의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40일동안 단식을 통해 조금씩 비워내 가벼워지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디지털 단식’으로 저녁 8시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TV를 시청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를 쾌락으로 채우지 않고 가짜로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두번째 사순실천은 단식으로 깨끗해진 우리의 마음인 하느님의 성전을 말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매일 저녁 8시에 가족이 모두 모여 루카복음을 반장씩 쓰면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그런데 디지털 단식과 루카복음쓰기 기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들어봅시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6-48).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건 이방인이나 세리들도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레위 19,2-18).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화를 위해 디지털 단식을 하고 루카복음쓰기를 합니다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사순결심의 실천과 자선이 꼭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이번 사순절동안 고치고 싶고, 더 실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결심을 사순모금함 앞에 적으십시오. 그리고 매일 그것을 실천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술을 끊어도 좋고, 커피를 안 마셔도 좋고, 드라마를 안 봐도 좋습니다. 또는 매일 남편이나 아내에게 ‘사랑한다.’하고 고백하거나 자녀를 칭찬하거나 이웃을 위한 선행을 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천에 대한 감사와 노력의 뜻으로 사순모금함에 매일 그 값어치만큼을 봉헌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사순절은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비움으로써 온전해 지고, 말씀을 채움으로써 충만해져 하느님의 영이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