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것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의 거리는 그동안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거리란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을 돌아보고 바꿔야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얼마만한 거리두기가 적당할까요? 1-2미터면 될까요? 그동안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맺어온 거리두기를 먼저 돌아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사람사이에 필요한 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거나 어느 경우든 우리가 맺어온 사람사이의 거리는 대부분 나 중심, 편리함 중심, 이득 중심이 아니었나 반성합니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나에게 편하고 이득이 되는 인간관계에 익숙하다보니 때론 너무 바쁘고 때론 너무 이기적이고 때론 너무 무심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코로나 사태로 인해 편했던 나만의 거리가 뒤틀어지고 강제되고 변화되자 당황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가족간의 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워야 한다는 것, 부부사이의 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세상과의 거리, 일, 취미생활과는 거리를 좀 더 두어도 되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입니다.
물리적 거리와는 달리 마음의 거리는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미움, 질투가 커지는만큼 마음의 거리 역시 멀어집니다. 무관심은 또 어떻습니까?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무관심해기 시작하면 마음의 거리는 천길만길이 됩니다. 그리고 편견과 선입관에 따라 외국인이거나 여자이거나 출신 지역과 학교에 따라 마음의 거리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마음의 거리는 지금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루카 17,21). 저는 이 말씀이 하느님 나라는 사람 사이, 곧 우리 서로가 맺는 거리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를 맺는 방식이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면 우리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드러납니다. 우리가 사회적 편견, 혐오, 불의로 가득 찬 사람사이의 편협한 거리를 넘어서려고 애쓰면서 약자들의 편에 선다면 우리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보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남을 위한 헌신과 사랑을 보여준다면 그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오늘 예수님의 말씀 역시 사람사이의 거리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앙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두기란 없습니다. 오직 하나됨, 일치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일치하는 삶은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넘어서는 사랑의 합일입니다. 참으로 믿는 사람은 매일이 주일이고 이웃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참사랑은 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도 결국에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 안에서 일치하듯이 우리도 거리를 넘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이의 거리에 대한 반성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방식 자체에 대한 반성과 회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로가 아닌 길의 삶’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를 따라 도로의 고속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있는 인간다움의 원리에 따라 길의 더딤을 선택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옆을 보지 않고 직선의 도로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과정을 소중히 하며 함께 곡선의 길을 걷습니다. 우리의 삶은 풍요롭고 비인간적인 고속도로가 아니라 소박하고 아름다운 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우리가 걷고 만나고 사랑하고 성장하는 길입니다. 그 길을 걷다보면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진리는 우리에게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 고생이 무의미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생으로부터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도로가 아닌 길의 삶을 직접 살아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적당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사랑의 일치에로 나아가고, 고속도로의 목표가 아니라 함께 걷는 길의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얻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걷는 길이요, 우리가 찾는 진리요,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