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면서 보고 느낀 것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한 가지는 ‘먹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미국은 패스트푸드의 천국입니다. 맥도널드 햄버거 뿐만 아니라 피자, 닭 날개 등을 튀긴 감자와 1리터나 되는 코카콜라와 함께 먹는 것을 즐겁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로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빅맥과 같은 햄버거는 맛이 있으면서 가격도 싸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만 그 결과 비만, 고혈압, 고지혈증, 심혈관질환, 설탕/소금 중독 등을 가져옵니다. 안타까운 점은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이런 싼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을 즐겨 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흑인들, 가난한 사람들이 패스트푸드의 저주를 감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입니다 (You are what you ate).” 이 말은 우리가 먹는 것이 배를 불리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와 나아가 존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매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음식, 곧 쓰레기같은 음식이라는 뜻의 정크푸드(Junk Food)를 먹게되면 그 사람은 건강이 나빠질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중독이나 부작용으로 불안 혹은 장애 증세를 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가 몸의 활력만이 아니라 마음의 생기를 돋구는 것입니다.
우리 천주교회는 빵 믿는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빵이라고 했으니까요. 빵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하는 양식이면서 더 깊은 면에서는 사람을 살게 하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결과로 죽었습니다. 그 가운데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넘쳐 났습니다. 수녀님들이 그런 고아들을 모아서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지만 부모의 죽음, 공포, 배고픔 등을 경험한 아이들은 밤에 제대로 잠을 못자고 계속해서 악몽을 꾸었습니다. 그때 한 수녀님이 특별한 아이디어를 하나 냈습니다. 밤이 되어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빵, 곧 길게 구운 바케트 빵을 하나씩 주어 안고 잘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밤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빵을 안고 자면서 ‘오늘 나는 빵을 먹었고 내일도 다시 먹을 빵이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빵, 우리의 목숨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을 위로하고 용기를 내게 하는 빵이 바로 아이들이 안고 잤던 빵과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과 포도주, 곧 예수님의 몸과 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밥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곡식이 자라는 것을 보면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노동과 정성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돌보심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곡식 한 알 한 알에 담긴 엄청난 생명의 신비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밥이니 너희는 나를 먹고 살아라’하시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너의 밥이다.’가 아니라 ‘저 놈은 내 밥이다.’하며 누군가의 밥을 뺏으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주는 것은 약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의 밥을 어떤 식으로든지 내 밥으로 만드는 것은 강하고 현명하게 보입니다. 혼자 일방적으로 자기만 먹으려 합니다. 그래서 지옥의 모습을 묘사한 것 중에 긴 숟가락이 있습니다. 지옥에도 천국과 마찬가지로 맛있는 음식이 잘 차려져 있는데 단 한가지 차이는 이렇습니다. 1미터가 넘는 숟가락으로 지옥에서는 어떻게든 혼자 음식을 떠서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하고, 천국에서는 같은 숟가락으로 음식을 상대방의 입에 넣어줍니다. 다른 사람을 배불리게 만들어 줄 때 나도 배가 부를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와 함께 살면서 늘 다른 사람에게 밥이 되는 삶을 살고자 애쓰셨던 어른이 남기신 말씀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한국천주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최고의 어른으로서 기꺼이 남에게 자신이 밥이 되어주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철거민촌에서 함께 밥을 먹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 위로의 편지를 쓰고, 창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경찰이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려 했을 때는 ‘나를 먼저 밟고 지나가라.’하고 스스로 그들의 밥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에 감사함과 따뜻함이 피어오르는 이유는 그분께서 자신을 아끼지 않고 기꺼이 우리에게 내어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꺼이 우리의 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몸과 피, 곧 온전히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특별한 가능성을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체성사는 곧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자주 모시면서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 곧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스스로 밥이 되어주는 길을 배우고 걷고 또 그렇게 되어 갑니다. 서로에게 밥이 되어 줍시다. 그것도 아주 건강하고 맛있는 밥이 되어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