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개의 육중한 철문, 철조망으로 덮힌 높은 담을 지나 교도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교도관들의 검은 제복이 재소자들의 낡은 옷에 비해 유난히 번쩍입니다. 지난 성목요일 주님만찬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대주교님과 함께 오후 세시에 대구교도소를 방문했습니다.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죄값을 치루는 이곳은 세상과 격리된 감옥으로, 어둠 속에 있는 죄인들이 대구교도소에만 이천 삼백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재소자, 교도관, 봉사자 열두명의 발씻김 예식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 마음은 내가 교도소 안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 도시 한 가운데 아파트로 둘러싸여진 교도소 안에서 느끼는 이상함과 재범 이상의 중형을 받은 재소자들을 바라보는 불편함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부활성야미사 때 대주교님께서는 이런 강론을 하셨습니다.
이 형제들이 밖에서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교도소에 들어오긴 하였겠지만 험악한 죄인들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성가를 부르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무얼 물어보면 대답도 잘 하는 그들은 우리와 별 다를 바가 없는 형제들이었으며 하느님 앞에 불쌍한 어린 양일 뿐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죄수가 5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교도소 안이 아니라 교도소 밖에 훨씬 더 많은 죄인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교도소 밖의 그 많은 죄인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요한 3,16).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신 세상을 여러분은 사랑합니까, 아니면 경멸합니까? 여러분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칩니까,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자만 합니까?
수도자나 성직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속세를 떠난 사람, 깨끗한 사람으로 죄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교도소 밖에 있는 죄인들입니다! 언제든 어둠에 빠질 수 있는 사람, 감옥이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사람이며 죄인이며 회개해야 할 사람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처럼, 오히려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힌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재소자들의 감옥 역시 세상입니다. 세상은 악이 아니며 속세는 구원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단죄하고 미워하며 엄격하고 무자비해지지 않도록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위해 자기자신을 내 놓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부하신 다음 말씀도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편안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저는 더 원합니다” (복음의 기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