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술실 앞 입니다. 가족들은 종양 제거 수술을 하러 수술실에 들어간 아버지가 나올 시간이 훨씬 더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자 걱정과 불안에 휩싸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가족들은 몸둘바를 모릅니다. 조금 더 있으니 의사가 나와서 마스크를 벗고 가족들에게 말합니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나쁜 소식은 우리가 발견했던 종양이 암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은 그 암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종종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은 함께 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선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 3,2).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회개해야 한다는 말은 나쁜 소식입니다. 자기 죄를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은 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소식만 찾고 나쁜 소식은 외면하려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좋은 소식만 쏙 빼서 챙긴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수님 탄생 덕에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대부분은 아예 ‘그리스도(Christ)를 위한 미사(Mass)’인 크리스마스(Christ+mas)에서 그리스도인 예수님도 없이 그저 놀기 좋은 때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뿐입니다.
우리는 마치 ‘베들레헴의 여인숙’ 같습니다. 해산날이 차서 진통을 하는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이 베들레헴의 여인숙 문을 다급히 두드리지만 모두 방이 없다고 합니다. 하느님이 들어가길 바라지만 들어가지 못하시는 모든 곳, 즉 오늘날 상점, 관공서, 아파트, 주택 등이 바로 그 여인숙입니다. 그곳은 모두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위해 있으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심지어 예수님에게도 줄 방이 없습니다. 하지만 열려있는 곳이 단 한 곳 있는데 그곳은 ‘마구간’입니다. 볼품 없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하느님께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가장 깊은 사랑이 체험되는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나는 여인숙입니까, 마구간입니까? 나는 하느님에게 문을 닫아 걸고 있는 여인숙입니까, 아니면 부족하지만 문을 열고 있는 마구간입니까? 나는 나만을 위한 좋은 소식만 챙기는 곳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위한 수고와 나쁜 소식도 받아들이는 곳입니까?
보통 우리는 평일에는 아주 쉽게 여인숙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일에 빠져 하느님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나에게 좋은 소식만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일에는 마구간이 됩니다. 자신의 내면이 어둡고 지저분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느님께 문을 열게 됩니다.
옛날에 어떤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겠느냐?” 제자들이 대답을 못하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너희들이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곳에 계신다.”
어떤 귀한 분이 여러분의 집에 온다면 그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마구간 같은 내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분주히 정리하고 오시는 분을 기다리며 옷도 깨끗이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문을 활짝 열고 귀한 분이 언제 오실지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드디어 그분이 오십니다. 그분은 두 손 가득 선물을 가지고 오시는데 그것은 나에게 온전한 평화, 가장 깊은 내면의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아름답게 표현한대로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는 그런 평화, 내 안의 불안과 걱정, 두려움이 모두 사라지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어도 되는 그런 온전한 평화를 나에게 선물로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성탄절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모두를 기다리는 때, 여인숙인 우리 마음이 마구간이 되는 때입니다. 또한 오늘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삶을 위한 성령과 차가워진 우리 영혼을 덮힐 불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나를 위한 좋은 소식만 낼름 챙기지 말고 다른 이를 위한 수고, 곧 나쁜 소식도 맞아들이는 것, 곧 이웃을 위해 수고하고 기꺼이 내 것을 나누어주면서 고해성사를 통해 마구간 같은 내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합니다.
오, 성탄이 얼마나 기다려집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신다니, 그분께서 마구간 같은 내 마음에서 태어나시겠다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념해야 할 성탄의 신비일 것입니다.
“오소서, 주님! 마구간처럼 보잘 것 없는 제게 오소서!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