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저는 부제품을 앞두고 있는 신학생이었는데 뉴욕 맨해튼에 있는 요셉의 집에서 한 달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집은 미국사람이면서 가톨릭노동자회를 설립한 ‘도로시 데이’ 라는 사람이 설립했습니다.
요셉의 집에 갔던 첫 날 오후, 저는 10분 거리에 있는 월스트리트(Wall Street)까지 혼자 걸어서 갔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세관인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 하면서 상념에 잠겼습니다.
저는 사제가 되기 전에 상대를 다녔습니다. 부와 성공과 명예를 추구하던 제가 부제품을 앞두고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앉아서 느꼈던 감정은 좀 묘했습니다. ‘내가 만약 기업가로서 성공했다면 여기가 나의 최종 목적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요셉의 집은 한때 노숙자였던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가톨릭신자였던 ‘도로시 데이’가 그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먹을 것을 주면서 시작된 곳입니다. 거기에 ‘럭키찰리’ 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분이 그날 오후에 월스트리트를 다녀온 저에게 내일 아침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럭키찰리’는 원래 이름이 ‘찰리’인데, 7년 전에 술을 끊고 새 삶을 살게 된 그에게 운이 좋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 럭키찰리와 저는 다시 월스트리트를 걷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누가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우리 둘은 월스트리트를 지나서 삼위일체 교회 지하로 갔습니다. 교회 지하에서는 AA라는 모임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AA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입니다.
5시가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럭키찰리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저에게 소개시켜주었습니다. 노숙인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은행원도 있고, 뉴욕증권거래소 직원도 있고, 변호사, 경찰, 레스토랑 경영자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매일 새벽 5시에 모여 나누기를 하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갑니다. 왜 이런 모임이 있는지 저는 그제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월스트리트에 있는 증권거래소 직원이나, 경찰이나, 은행가나, 사업가나, 심지어는 노숙인 까지 이른 아침에 모여서 자신들이 한때 알코올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 모임을 하고 각자의 자리로 출근하는 것입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순서를 정해 그날 정해진 사람이 발표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발표 첫마디에, “제가 술을 끊은 지 몇 개월 며칠이 되었습니다.” 라고 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날 모임에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주인이 자기가 어떻게 알코올중독이 되었고, 그 때문에 어떻게 모든 것을 잃었고, 다시 술을 끊으면서 또 어떻게 새 삶을 살게 되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6시경에 모임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 모두는 첫 단계에 이런 선서를 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의 직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한때 술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던 그들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나는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날 제가 뉴욕증권거래소 앞, 세상에서 가장 큰 세관 앞에서 돈 많은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다음날 새벽, 알코올중독자 모임에서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성공했던 사람들 이면에는 세상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또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나락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돈과 부귀영화, 성공 뒤에는 모든 사람이 다 “나는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얼마나 약한지, 그래서 어떻게 하느님이 필요한 지 인정하는 것은 때로 우리에게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죄인만 회개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회개하지 않는 성인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란체스코 교황님도 그러합니다. 교황님이 19살 때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축일에 복음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날 고해성사를 보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른다고 느꼈으며, 이후에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평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하셔서 교황이 된 후 ‘자비로이 부르시니…’라는 말씀을 모토로 삼았습니다. 마태오를 부르셨던 예수님의 그 부르심을 프란체스코 교황님도 느끼셨고, ‘자비로이 부르시니…’ 라는 말씀을 평생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과거가 없는 성인이 없고, 미래가 없는 죄인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태오는 세관장으로서는 세상에서 성공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다른 사람의 돈을 징수하면서 수많은 부귀와 풍요로움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문득, 주변 가족이나 친구, 인정이나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이 뭐지?’ ‘행복이 뭘까?’ ‘삶의 의미는?’ ‘나는 왜 사는가?’ 그런 고민 때문에 자기가 일하던 세관 앞에 앉아서 고민하고 번민하며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회의하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반성하고, 회개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라고 하면 우리가 진심으로 자신의 온갖 죄를 하느님 앞에 고백하면 하느님이 그 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들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그 반대입니다. 세례로 우리는 이미 하느님 자녀가 되었습니다만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깨닫고 슬퍼하며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마태오가 세관 앞에 앉아서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마태오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 고 이야기하십니다. 그 말씀은 “이제는 너 자신의 삶, 욕심, 희망이 아닌 나를 따르라.”, “너의 목표, 너의 욕심, 너의 성공, 너의 기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너에게 주시는 삶, 곧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친절 등을 맺는 삶을 살아라.” 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자비의 희년에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자비로이 부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이 자비의 희년에 나는 어떻게 자비를 체험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갈 것인가’ 를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나 혼자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만났던 그 알코올 중독자들의 첫 마디가 “나는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자비로운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고,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시고, 용기와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방법을 한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세 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먼저 오른쪽 사람을 쳐다보고 제가 하는 말을 따라하십시오.<고맙습니다.> 왼쪽 사람을 쳐다보고 두 번째 말을 따라하십시오. <미안합니다.> 앞에 있는 제대와 성모님을 쳐다보시고 마지막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이 세 마디를 매일 하도록 하십시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 마디를 매일 하면, 우리는 좀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이 필요한 이유이고, 또 하느님의 도움으로 가능한 이유이고, 오늘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어떻게 그 부르심에 응답할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