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에 따르면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직립보행’이라고 합니다. 네 발로 땅에서 기는 동물은 얼굴이 땅을 향하고 있지만 두 발로 설 수 있는 인간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이 늘 머리를 땅에 박고 먹고 사는 문제에 목을 맬 때에도 인간은 하늘을 보며 자신을 넘어선 어떤 것을 생각합니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 때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위로 받은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유학시절, 고국의 하늘과 너무나 닮은 높고 파아란 하늘을 보며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이들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이 참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늘을 볼 때 평소에 잊고 있던 것을 깨닫고, 나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열쇠, 곧 key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그 사람이 문제 해결에 key를 가지고 있다’거나 ‘이것이 바로 key 포인트다.’라고 말하듯이 key는 막힌 것을 풀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는 집이나 자동차의 열쇠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열쇠입니다. 이 열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 될 뿐 아니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 곧 천상교회와 지상교회를 하나로 잇는 자리에 있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에게 주어진 하늘나라의 열쇠는 우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을 묵상해보면 하늘 없이 땅이 없고 땅 없이 하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둘은 서로를 있게 합니다. 하느님과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없는 사람이 없고 사람 없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둘은 서로를 있게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 편에서의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 본성의 선하심이 인간을 위해 모든 것, 자기 자신마저 내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인간에게 주어진 하늘나라의 열쇠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타인과 나도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와 같습니다. 타인 없이 내가 없고 나 없이 타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둘은 서로를 있게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 것만 추구하며 살아갈 때, 공동체에서 자신의 욕심만 채울 때 사람은 성숙할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그만큼 사람은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는 타인을 통해 땅에 있는 인간인 나를 만나고 성장하게 합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영성의 기초는 아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에 대한 깨달음 없이 하느님을 알 수 없으며 타인에 대한 연민 없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지 못하면 죽음을 알 수 없고, 살아있는 동안 선을 행하고 살지 않으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육화(incarnation)의 신비는 인간인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음을 깨닫고 땅에서 하늘을 만나는 체험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 같은 육화의 신비를 자주 체험해야 합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천상 것을 생각하고 현실에서 육화의 신비를 만날 때 우리는 하늘을 잊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종종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 것을 넘어선 어떤 것을 볼 때 우리 마음이 반향(reflection)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이웃사랑을 통해 이기적인 나를 넘어서도록 노력하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사랑과 온유와 같은 가치를 실천하는 것은 육화의 체험입니다. 작고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씨앗 안에서, 가끔은 그런 사람들 속에서 크고 강한 나무,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음을 알고 신뢰하는 것도 육화의 체험입니다. 세상에서 인기가 없는 가난, 정결, 순명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세상 한 가운데에서 수도자로 사는 것도 육화의 실천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 안에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것은 그분을 중심으로 완성되어 가는 진리의 현현입니다. 우리는 만물 가운데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지만 하느님께서 ‘너’라고 부르며 사랑으로 초대한 파트너로서의 우리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화의 체험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늘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고생도 하며 눈물도 흘리고 시련도 겪겠지만 하늘을 보며 위로 받으며 용기를 내어 희망하는 인간, 곧 ‘하늘을 간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1베드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