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의 3대 명절은 설, 단오, 한가위를 꼽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가위’는 가장 큰 명절로 일찌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가위 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한가위에는 보름달을 보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풍성한 상상을 합니다. 한가위 전에는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효성의 표시와 도리로 여겼고, 추석 이른 아침에는 종가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풍속입니다.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먹는다’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한가위는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입니다. 특별히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송편을 빚는 정경은 아름다운 풍속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가위는 우리 겨레만의 풍속이 아닙니다. 인류가 곡식을 기르고 정착하면서 신이 내리는 햇살과 비, 바람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자라났습니다. 곡식을 심고 밭을 가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것을 기르고 열매맺게 하는 것은 하느님이심을 인류의 조상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가위를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 혹은 ‘Thanksgiving’이라고 부릅니다. Thanksgiving 이라는 말에는 창조주에게 드리는 감사와 찬미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화답송에서처럼,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한가위에 우리는 한껏 배불리 먹고,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축제와 감사, 찬양의 시기인 한가위는 넉넉함이 넘쳐나는 시기여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북한에 고향과 부모, 형제를 두고 떠난 실향민, 돈을 벌기 위해 조국을 떠난 외국인 노동자, 자식없이 홀로 사는 독거노인, 부모와 형제가 없는 고아들, 수해와 산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우리 사회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추석명절에 만날 가족과 형제/자매가 있다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한가위가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립하는 날, 부부 싸움하는 날, 형제들끼 의리 상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족간의 불화와 갈등, 서로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인정과 사랑보다 물질적 가치가 더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에서처럼 자신을 위해서 재화를 모으고 자신을 위해서 곳간에 재물을 쌓는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은 별 소득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돈만으로 살지 않습니다. 톨스토이가 쓴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있지만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인생을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것이며,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산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우리에게 주어진 얼마간의 시간은 사랑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오는 추수감사절에는 ‘고맙다’는 말을 두 배는 더하면 좋겠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형제들은 서로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자식은 부모님께 ‘고맙습니다’하는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얼마나 부유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은행잔고에서 비롯되지 않고 사람 사이에 주고 받는 따뜻한 마음에서 옵니다. 추수감사절, 더 많은 감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우리 하느님을 찬양할 때,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에 진정한 부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