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십년차 사제 성지순례를 이스라엘로 다녀왔습니다. 그 중에서 나자렛에서 방문했던 ‘주님탄생예고성당’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큰 성당이며 우리나라 말로 된 성모송도 모자이크로 되어 있어서 규모뿐만 아니라 친숙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웅장한 성당 안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면 조그만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고 전해집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 7,14)는 말씀이 선포된 장소입니다. 그곳에는 “바로 여기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Verbum Caro Hic Factum est)”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류 구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스라엘 산골 소녀인 마리아의 ‘예’라는 응답, 곧 ‘Yes’ 때문이었습니다. 하와가 에덴의 동산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 ‘No’라고 말했지만 새로운 하와인 마리아는 ‘Yes’라고 말함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달리 말하면, 오늘 제2독서의 말씀처럼, “죽음이 아담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참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yes를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yes,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서 yes, 나의 옳음, 나의 기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서 yes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겸손과 순명,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를 연습합니다.
특별히 오늘 저는 일 년 전에 만났던 분, 곧 제 스스로 “바로 이분이다”라며 ‘yes’라고 말했던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2014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동안 한국 가톨릭 신자만이 아닌 온 국민이 이 사람, 그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지켜보았던 것을 기억합니까?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그분은 우리나라를 찾아오셔서 잠들어 있던 우리 영혼(soul)을 일깨웠습니다. 한국 방문기간동안 그분이 타고 다녔던 쏘울(Soul)은 하나의 상징으로, 교황님은 망각 속에 묻힌 우리의 ‘기억’을 깨워 우리가 지닌 그 엄청난 보화를 다시 생생하게 ‘증언’하고, 이를 통해 상처와 슬픔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라는 교황님의 가르침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가르침의 목소리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즐겁고 행복한 메시지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불편함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방한 첫날부터 우리가 애써 닫으려 했던 기억의 문을 두드려대기 시작했습니다. 8월 14일 도착하자마자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고 “마음 깊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집요했습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124위 시복식에서 그분은 세월호를 자신의 아픔으로 품어 안았습니다.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라는 말씀을 직접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명동성당 미사 때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용산 참사 희생자 가족, 쌍용 해고자들과 만나 위로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잊으려 했던 사회의 상처와 고통을 들추어냄으로써 우리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에겐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을 지적했고, 수도자들에겐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생활자들이 신자들을 상처 입히고 있다”고 직언하셨습니다. 또한 이 땅의 순교 선조들이 어떻게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의 신앙을 지켜냈는지 강조하심으로써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꽃동네에서 장애 아동들이 준비한 공연을 40분 동안 지켜보면서 79세의 관절염을 앓고 있는 교황님은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있음으로써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실 교황님 메시지에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대신에 화석처럼 굳어버린 우리 ‘기억’을 되살려주어 그동안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적인 삶을 반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추려 했던, 부정하려했던 불편한 기억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모든 일에 있어서 yes라고 말한 성모님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어떠한 요구와 부르심에도 기꺼이 yes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신자가 가야 할 신앙의 여정입니다. 내게 불편한 기억,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에서조차 기꺼이 yes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된 의미의 신앙인,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모 마리아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점입니다.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성모승천대축일인 오늘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를 함께 기억합시다. 이 나라 이 땅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고통 받는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어서 빨리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로 통일이 되도록 힘을 모으는데 yes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불편하고 힘든 일을 포함해서 모든 일에 있어서 기꺼이 yes라고 말하는 신앙인이 됨으로써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신비가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성모승천대축일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평화의 모후시여, 우리나라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모든 사제들의 어머니시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하여 빌어주소서.